한국도로공사가 변하고 있다. 방만경영, 보수경영으로 통했던 그런 저런 공기업에서 경영혁신 선봉장으로 180도 탈바꿈하고 있다. 재무구조가 크게 좋아졌고, 해외 유수 투자기관들은 싼 이자라도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이다. 경영문화는 유리알처럼 투명해졌다. 얼마전엔 국가와 동일한 신용등급을 받기까지 했다. 정부나 여타 공기업 모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정도의 파격적 변신이다.
이 같은 도로공사의 변화 한 가운데 바로 오점록(61) 사장이 서 있다. “도로공사의 혁신을 맨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오 사장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도로공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도로공사 직원들의 한결 같은 말이다.
지난 2001년 6월 취임 이후 오 사장이 주도한 경영혁신의 결과물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고질적인 부채중심의 재무구조가 개선됐다. 정부의 100% 건설비 지원금이 지난 89년 50%로 축소된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부채가 최근 들어 주춤해진 것. 도공측은 올해 15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던 부채가 현재 13조원대에서 동결되고 있다며, 2년동안 2조3,000억원의 부채억제 효과가 발생했다고 평가한다.
이는 오사장 부임 이후 고속도로 건설 적정투자규모를 연간 4조원대에서 2조5,000억원 수준으로 낮추는 한편 비업무용 자산매각(172억원), 자회사 매각(1,117억원), 휴게시설 민자유치(519억원) 등 끊임없는 자구노력의 성과물이라는 데 재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금리변동위험을 피하기 위한 금리스왑(204억원 절감)과 인터넷 공모 발행(38억원 수수료 절감) 등 다양한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하는 한편 국내 최초로 15년(1,800억원), 20년(1,000억원)짜리의 초장기채권 발행 등 재원조달의 다각화까지 독려하며 지속적인 경영혁신에 힘썼다.
경영의 투명성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은 동정의 양면과도 같다는 오사장은 지난 5월 윤리경영헌장을 선포하는가 하면 투명경영의 시작은 정보와 지식의 공유 및 공개라며 모든 경영과정 및 결과물을 가감없이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또한 사내벤처(고속도로 교통정보제공사업팀)제를 도입하는 등 조직구조를 슬림화시켰고 인사, 조직, 회계제도 등 경영 전반의 운영시스템에 효율성 높은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오사장의 이 같은 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진가를 발휘했고, 외부의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도공은 지난해 기획예산처가 12개 정부투자기관을 대상으로 한 경영실적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능률협회에서 경영개선 우수기업으로 선정됐고, 부패방지위원회의 청렴도 조사에서도 공기업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올 봄엔 세계적인 신용기관인 스탠다드푸어스(S&P)와 무디스사로부터 각각 국가와 동일한 신용등급을 획득하기까지 했다. 이는 국내기업중 최상위 등급이다. 이 덕분에 최근 유리한 조건으로 10년만기짜리 5억달러의 채권 발행에 성공,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했다.
오사장은 이 같은 자구노력과 함께 점차적인 통행료 인상, 정부의 지원 확대 등이 맞물린다면 2010년 무차입경영기를 거쳐 2020년부터는 흑자경영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경영혁신의 선도자였던 오사장도 처음부터 직원들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군인 출신(육사 22기)인 그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국방부 차관보와 병무청장을 거쳐서 직원들의 눈엔 소위 `낙하산`으로 비쳐졌기 때문. 하지만 수십년간 경험에서 나온 조직장악력과 경영학박사라는 능력까지 겸비한 실력 앞에 노조를 비롯한 전 임직원들은 오사장을 곧 인정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줄곧 일사불란하게 뒤를 따르고 있다.
“취임 당시 노조가 요구했던 4가지 조건 중 참된 도공인 되기, 재무구조 개선, 공정한 인사관리 등 3가지는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임기 동안 마지막인 활기찬 조직문화를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최근 서로 칭찬해 주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오사장은 퇴임전까지 노조의 요구를 모두 이뤄 2006년까지 정부와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않는 독립 채산형의 공기업 표준 모델을 완성할 계획이다.
■ 경영철학과 스타일
“변화만이 살 길이다”
오사장이 24살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후 현재까지 조직을 이끌어가며 조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은 `안일즉사(安逸卽死) 변혁즉생(變革卽生)`. 편안히 현실에 안주하면 곧 죽을 것이고, 과감하게 변한다면 살 것이다라는 의미처럼 오사장은 항상 변화, 혁신을 조직의 생존논리로 주창한다.
이 점에 있어선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전 병무청장 재직시엔 국방부의 인력절감, 3군 지원단 통합 등 민감한 사안을 거론하며 국방부의 조직혁신을 강하게 외쳐 국방부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경영철학은 투명ㆍ참여ㆍ효율. 오사장은 “공개와 공유를 통한 투명경영과 협동과 협력을 통한 참여경영, 선택과 집중에 의한 효율경영을 실천할 때 제대로 된 성과물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업경영엔 이처럼 확고한 철학을 갖고 전념하는 오사장이지만 직원들의 평가는 의외로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자상하고 소탈하다는 게 대체적이다. 군인출신의 특징인 격식주의는 아예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오히려 신입사원들과도 축구를 같이 할 만큼 거리낌없이 지낸다. 또 왕왕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며, 매주 수요일을 전 간부들과 일반 직원이 함께 식사하는 요일로 정하기까지 했다.
현재 한국 리더십 학회장인 그는 매주 한 차례 경희대에서 조직관리에 대해 강의를 할 만큼 리더십에 관해서는 전문가로 통한다. 테니스, 스키 등 웬만한 스포츠는 수준급이다.
◇약력
▲43년 전남 화순 생
▲62년 광주고 졸
▲66년 육군사관학교 22기
▲91년 육군 제 12사단장
▲97년 국방부 차관보
▲98년 국방부 기획관리실장
▲99년 병무청장
▲01년 도로공사 사장
<홍준석기자 jsh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