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중산층의 몰락… 기업 경영·시민 라이프스타일 마저 바꿨다

英·美·日등 가계수입 급감따라 외식 줄고 다세대 가구는 급증<br>기업도 반값 샌드위치 출시등 초저가 제품 개발·마케팅 나서<br>조기퇴직 실시·감원도 잇달아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 옥스퍼드영어사전(OED) 편집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다. 올해 초 영국 노동당 대표 에드 밀리밴드가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 물가 상승, 임금 동결, 공공지출 삭감 등에 영향을 받는 계층을 가리킨다. 통상적으로 중산층은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집도 한 채 보유하고 있으며. 의료보험이 있어 아플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었다. 또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고 휴가철엔 가족여행도 떠나며, 은퇴 뒤에도 괜찮은 노후를 보낼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쥐어짜인 중산층'은 더 이상 이런 삶을 살 수 없게 됐다. ◇중산층, 전세계에서 신음중=중산층의 몰락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제조업 감소로 일자리가 줄면서 실업은 늘고 임금 수준은 하락하고 있다. 중산층이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각종 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 인구통계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의 빈곤층(4인가족 기준 연소득 2만4,343달러 미만)이 전체 인구의 16%에 달하는 4,910만 명으로 집계돼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9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지금 같은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10년 안에 1,000만명의 빈곤층이 더 늘어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내놓았다. 영국의 경우 내년 가계수입이 2009년에 비해 7.4%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2015년 가계 평균수입은 2002년 때보다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국 재정학 연구소는 "정부의 긴축정책에서 비롯된 장기간의 임금삭감 및 동결로 가계 수입이 줄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향후 5년 동안 중산층의 소비력이 급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자나라로 꼽히는 일본 역시 빈곤층이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지난달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후생노동성의 통계자료를 인용, 지난 7월 기준 생활보호대상자가 205만명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전후 최고 수준이었던 1951년의 월평균 204만6,600여명을 웃도는 수치다. 2008년 미국 대형 금융기업인 리먼 브러더스 파산, 올해 초 발생한 대지진, 유럽 재정위기 및 전세계적인 경기하강 등의 영향이 컸다. 중국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며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2005년 1월 중국 통계국 자료에서는 월소득 5,000위안이면 중산층에 속했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이 6년새 180%나 오르면서 과거 중산층에 속했던 사람들도 더 이상 스스로를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하남상보의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가 월소득 8,000위안이 넘어야 중산층이라고 답했으며, 33.3%는 월소득이 1만~2만위안은 돼야 중산층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답했다. ◇시민ㆍ기업들의 삶까지 뒤바꿔= 중산층의 붕괴는 시민들의 삶도 뒤바꿔 놓고 있다. 여유있게 소비생활을 하던 이들은 이제 초저가 제품만 구입하고,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요리를 해먹기 시작했다. 경제난으로 자립이 어려워지자 한 지붕 아래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다세대 가족(multi-generational homes)도 늘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PEW) 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다세대 가구 인구는 지난 2007년 4,650만명에서 최근 5,100만명으로 늘었다. 또 미국에서 가난을 이유로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은 지난 2006학년도 1,800만명에서 2010학년도 2,100만명으로 4년새 17%나 늘었다.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진 시민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시위 등 집단행동으로 표출하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금융위기와 관련한 월스트리트에 대한 분노로 뉴욕에서 촉발돼 유럽 등 세계 전역으로 확산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도 몰락한 중산층의 불만에서 야기됐다. 기업들 역시 소비를 주도하던 중산층이 사라지고 소비층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으로 양분화되자 각각 이들을 겨냥한 '투트랙(two track)' 전략으로 제품 개발 및 마케팅 전략을 바꾸고 있다. 세계 최대 소비재 생산업체인 프록터 앤 갬블(P&G)의 경우 창업 이후 처음으로 초저가 식기세척기용 세제 '게인(Gain)'을 출시했다. 음식료업체인 하인즈 역시 저가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달러 제너럴, 패밀리 달러와 같은 달러숍들도 우훅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미국 최대 샌드위치 체인점인 서브웨이는 12월 한달간 2달러짜리 '반값 샌드위치'를 내놓았으며 타코벨, KFC 등 패스트푸드업체들도 잇달아 2달러짜리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에 집중하는 기업들의 성장전략을 두고 씨티그룹은 허리가 잘록한 모래시계 모양에 빗대 '소비자 모래시계 이론'이라고 명명했다. 일본의 경우 빈곤층 확대가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종신 고용'의 전통까지 없애고 있다. 올해 4,200억엔(약 6조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는 파나소닉은 1만5,000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전자부품 업체 TDK도 1만1,000명을 감원한다. 노무라, 미즈호 등 대형 증권사들도 수백명에서 1,000명 이상의 조기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 WSJ은 유럽의 '쥐어짜인 중산층'의 실태를 소개하면서 "매우 오랜 기간 국가부채를 갚아가면서 경제는 더딘 성장을 할 것이며 이 기간 동안에는 근검절약이 새로운 생활기준(new normal)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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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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