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귀한 음식이었다. 숙종·영조·정조 등 조선의 임금들은 기력이 쇠하면 미음에 우유를 섞어 끓인 타락죽을 보양식으로 먹었다. 우유는 조선왕조실록뿐만 아니라 삼국유사·고려사 등 더 앞선 시대의 사료에서도 발견된다. 이홍구 건국대 동물자원학과 교수는 "삼국유사에 농축 유제품을 나타내는 한자 '락(酪)'이 등장하고 왕이나 일부 귀족들이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고려 시대에는 이미 목장 문화가 자리잡았고 우왕 때는 국가상설기관인 '우유소'라는 목장을 설치해 왕실과 귀족 등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우유를 마셨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조선 숙종 때는 '낙죽'을 원기 보양식으로 진상했다"며 "당시 왕이라 해도 아무 때나 마실 수 없을 만큼 우유는 진귀한 보양식이었다"고 덧붙였다.
우유를 실컷 마셔보는 게 전 국민의 소원이던 시절도 있었다. 손정렬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962년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현지 학생들이 우유를 맛있게 마시는 모습을 보고 카를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에게 우리 국민도 우유를 한번 마음껏 마셨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이에 독일 정부가 50만달러의 차관과 젖소 200마리를 지원했고 7년여의 노력 끝에 200평 규모의 한독목장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1969년 소 한두 마리로 농가 교육을 실시하던 것이 1980년대 들어 낙농 기술이 널리 퍼졌고 목장 수도 크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
젖소에 대한 동경은 동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천일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어린 시절 배우고 즐겨 부르던 '송아지'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소가 바로 젖소"라면서 "원래 우리나라 소는 얼룩소가 아닌 누렁소였고 젖소는 쉽게 키울 수 있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아이들의 노래에 담겼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