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시적으로 자금 사정이 어려웠던 대형 제조업체 A사. 하도급 사업자인 중소 포장용기 제조업체 B사와 협의를 거친 뒤 납품단가를 6개월 동안 소폭 인하하기로 했다. 대신 형편이 나아진 뒤 손실분에 대한 보전을 100% 해주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당 단가 인하로 납품업체 손실금액의 3배를 손해배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6개월이 지난 뒤 A사는 약속대로 납품단가를 종전 수준보다 높여 B사와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하도급·유통·가맹 분야 불공정행위가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단가 후려치기'나 부당한 위탁 취소·반품, 기술을 가로채는 행위 등 이른바 4대 불공정행위는 전년보다 4분의1가량이 줄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거대 유통기업의 '갑질'로 질타를 받았던 중소기업 판매장려금 수취 관행도 전년 대비 80% 넘게 줄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3일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2개월간 진행한 하도급·유통·가맹 분야 불공정 거래 행태 개선 2차 현장 실태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하도급 수급사업자 1,416개, 유통 납품업체 805개, 가맹점주 1,008개 등 총 3,229개 업체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불공정행위가 가장 극적으로 감소한 곳은 유통 분야다. 공정위 점검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부당한 '기본장려금' 지급을 경험한 납품업체 수는 27개로 전년 144개보다 81.3%가 줄었다. 기본장려금이란 대형마트 등에 납품하는 업체가 판매량에 상관없이 매월 납품 금액의 5~7%가량을 대형 유통기업에 내도록 하는 관행을 말한다. 공정위는 지난 2013년 10월 심사지침을 개정해 부당한 판매 장려금 수취를 금지한 바 있다.
제도 개선 이후 납품업체에 인테리어 비용을 전가하는 불공정행위가 감소했다는 응답도 48.7%에 달했다.
불공정행위의 온상으로 꼽혔던 하도급 거래에서도 불공정행위가 상당 부분 줄었다. 지난해 4대 불공정행위(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감액, 부당위탁 취소, 부당 반품, 기술유용)를 경험했다고 답한 중소업체는 114개로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공정위는 2013년 11월부터 기술유용에만 적용되던 3배 손해배상제를 부당하게 단가를 후려치거나 위탁을 취소하고, 또 반품하는 행위 등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하도급 업체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맺어진 부당 특약도 전년보다 22.1%가 감소했다. 조사 대상 중소업체의 83.3%는 "4대 불공정행위가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편의점 등 가맹사업 분야에도 개정 가맹사업법이 시행된 지난해 2월 이후 심야영업 강제 등과 같은 고질적인 불공정행위가 사라지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심야영업시간 단축을 신청한 가맹점 1,512개 중 단축에 성공한 가맹점은 996개였다. 10곳 중 6곳에서 가맹본부의 강요에서 벗어난 셈이다. 점포 환경 개선을 강요하는 행위도 1,692건으로 전년 대비 11%가 줄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경제 민주화의 일환으로 하도급·유통·가맹 분야에서 새로 도입된 제도들이 불공정거래 개선의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라며 "익명 신고제도 등을 활성화하는 등 앞으로도 불공정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