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부분보장제 연기론 왜 힘얻나
금융개혁 맞물려 혼란 부채질 우려
당초 내년 1월1일부터 금융기관 파산 때 예금자에게 2,000만원까지만 보장해줄 예정이었던 예금부분보장제도가 연기(유보)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번주 중 시행시기, 보장한도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을 확정하기 위해 막바지 검토작업에 들어간 정부는 그동안 예정대로 시행 예정대로 시행하되 보장한도 상향조정 연기 등 3가지 방안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심해왔다.
그러나 지난 6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4명의 전·현직 경제부총리 및 재정경제부 장관을 청와대로 초청한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 다수가 내년 1월1일 예금부분보장제를 실시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연기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연기론 득세=정부는 그동안 예금부분보장제를 당초 예정대로 내년 1월1일부터 실시하되 보장한도를 3,000만~5,000만원으로 상향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갔다. 우량한 금융기관에 인센티브가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시장에 의한 금융·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구조조정이 더딘 은행들이 예금 전액보장을 무기로 고금리 수신경쟁을 일삼는 도덕적해이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金대통령과 경제원로간 간담회를 계기로 정부의 기존방침이 조심스럽게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간담회 당시 최각규(崔珏圭)·강봉균(康奉均)·이헌재(李憲宰)씨만 예정대로 시행을 주장했을 뿐 이승윤(李承潤)·조순(趙淳)·홍제형(洪在馨)·김만제(金滿堤)·나웅배(羅雄培)·임창렬(林昌烈)씨 등은 연기론을 제기했다.
진념(陳稔) 재경부장관은 9일 『내년에 부분보장제로 간다는 것은 내년 중에는 시행한다는 뜻이며 1월부터 시행할지, 연내 적당한 시점에 시행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시행시기를 하반기로 연기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金대통령도 9일 여야 영수회담에서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연기주장에 『정부가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이 제도가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금발심 위원이면서 개혁파로 알려진 정운찬(鄭雲燦) 서울대 교수와 조윤제(趙潤濟) 서강대 교수도 신중론(연기론)을 내놓았다. 연구기관에서도 삼성경제연구소 등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연기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연기론 왜 주장하나=연기론자들은 금융개혁작업과 동시에 예금부분보장제를 시행할 경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 주도의 2차 금융구조조정이 올해 말까지 추진되더라도 그 영향은 실제 내년까지 지속되는데다 금융구조조정과 예금보장한도 축소에 따른 시장주도의 구조조정이 겹쳐 상승효과를 일으키면서 파괴력이 증폭돼 부실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우량금융기관의 유동성 위기 및 도산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예금보장 한도를 5,000만원으로 확대하더라도 68조원 정도의 자금이 우량은행으로 이동하고 예금자들의 심리적 불안요인이 가세하면 그 규모가 최대 110조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개혁후퇴 논란 제기될 수도=예금부분보장제가 연기되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금융·기업구조조정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예금부분보장제는 시장의 힘으로 우량금융기관과 부실금융기관을 차별화해 우량금융기관에는 인센티브가 돌아가고 부실금융기관에는 자구개혁을 압박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금전액 보장이 계속된다면 부실금융기관들은 굳이 어렵고 힘든 구조조정에 나설 이유가 없어진다.
게다가 이 제도의 시행을 늦추면 정부의 개혁의지 전반이 퇴색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구동본기자
입력시간 2000/10/10 19:36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