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부진과 불경기가 닥치자 대기업들이 살아남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정부가 경쟁력 10% 제고방안을 내놓고 공무원의 임금동결로 솔선수범을 약속하자, 이에 질세라 민간부문에서도 제각기 방안을 내놓기에 부산하다.○불황속 인력 재배치
애초에 선경인더스트리의 명예퇴직으로 시작되어 각 기업들로 확산의 기미를 보이던 몸집 줄이기 내지 구조조정이 어느새 슬며시 후퇴해 버리고, 그 대신 모 재벌기업의 선창에 따라 한결같이 종업원을 껴안고 불황 건너가기 전략으로 바뀌면서 전사원의 임금동결 및 인력재배치란 형태를 강조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것이 평생직장, 한가족을 주장해오던 재벌그룹의 행태에도 잘 어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한편으론 이미 사양화로 경쟁력이 떨어진 분야의 인력을 껴안고 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경쟁력 저하를 감수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이를 위해서는 잉여인력의 재교육이 필요하고 기술과 시설투자도 새롭게 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재벌기업에 새로운 사업참여를 허용해야 할지 모른다. 이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억제 및 업종전문화를 강조해온 정부정책의지와 분명히 배치된다. 어쩌면 정책의 기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유연한 미 노동시장
당장의 애로타개가 어렵다고 해서 재벌기업들로 하여금 직장내 유휴인력을 유지시키면서 추가적인 사회적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유리한 것일까, 아니면 넘쳐나는 인력을 그대로 방치하여 생존의 몸부림 속에서 이 사회에 새로운 것이 창출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까.
최근의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에서 보면 미국내 대기업들이 끊임없이 다운사이징과 리엔지니어링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정리해고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92년 경기저점 이래 1천2백만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한다. 현재 실업률도 5.1%로 지난 7년내 최저치이다.
지난 80년대 미국의 5백대기업은 3백만명이나 잘라냈다. 이런 추세는 경기회복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오는 2000년까지 2백만명 이상을 더 줄일 것이라고 한다.
AT&T가 대표적으로 베이비벨로 분할하기 이전에 1백만명을 넘어섰던 종업원수가 지금은 자회사를 다 합쳐도 70만명에 불과하다. 무려 30만명 이상을 줄인 셈이다. IBM도 새로운 회장하에서 30만명의 인원이 18만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국은 고용이 1천8백만명이나 증가하였다. 대기업이 줄인 3백만명을 감안하면 2천1백만명의 일자리가 새로이 생겨난 셈이다.
이 모두가 작은 중소기업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성과이다. 지난 10년동안 1백50만개의 새로운 중소기업이 탄생했다. 이들이 최소한 10명의 종업원으로 시작했다면 1천5백만명의 일자리가 생겨난 것이고, 15명으로 출범했다면 2천2백50만명의 고용이 늘었다는 계산이다. 이들의 활력으로 미국은 사상 최대의 고용창출을 누리고 있다.
○중기 일자리 늘려야
반면 고용안정이 철저한 EU국가들의 경우 90년대에 들어와 오히려 고용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실업자가 2천만명을 넘어서 실업률은 미국의 2배에 이른다. 만약에 AT&T나 IBM 등 미국의 대기업들이 고용을 축소하지 않고 더 늘리거나 현상유지를 했다면 미국경제는 더 나아질 수 있었을까.
물론 미국의 경우는 특수하다. 우선 엔터프레너들이 자유롭게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업하거나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은행대출제도와 풍부한 벤처캐피털, 그리고 자본시장도 창업에 유리하게 되어있다.
우리도 단기적인 고용안정이란 명분에 매달려 대기업의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사업확장을 묵인해 주기보다는 경기변동에 따라 필요하다면 정리해고도 가능토록 하는 분위기가 경제활력에 더 보탬이 될지 모른다.
삼성, 현대, 대우 등에서 근무하던 우수한 인력들이 업무조정으로 방출될 때 이들이 중소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거나 새로운 직업을 찾아나선다면 우리 경제사회를 보다 동태적이고 활력있게 만들지 않을까. 이것이 당장의 고용안정보다는 더 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