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부도 빚더미 경영서 비롯” 판단/99년부터 부채높은 그룹 세불익 클듯문민정부의 임기말기에 강력한 형태의 「신재벌정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가 기업의 지나친 차입금의존 경영행태에 대해 세제차원의 불이익을 주는 등 강력한 개선책을 마련키로 한 것이다.
정부는 30일 김영삼 대통령 담화의 경제분야 후속대책중 핵심은 ▲차입금이 자기자본의 5∼6배를 초과하는 기업에 대해 초과 차입금의 지급이자를 손비로 인정해 주지 않고 ▲재벌그룹의 다른 기업에 대한 빚보증(채무보증)도 차입금 산정에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재벌기업들의 연쇄도산이 근본적으로 과도한 차입의존적 경영행태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올 연초 부도난 한보, 삼미그룹과 최근 부도방지협약 대상으로 지정돼 자구노력중인 진로, 대농그룹은 모두 「빚더미경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보와 삼미의 경우 자기자본의 수십배에 달하는 빚으로 회사를 꾸려왔으며 진로의 경우 부채비율이 무려 3천7백64.7%에 달했다. 또 대농그룹의 경우 총자산(1조7천8백억원)보다 총부채(1조8천3백억원)가 많은 자본잠식 상태였다.
30대 재벌기업의 자기자본대비 부채비율은 평균 3백86.7%로 미국 일본 대만 등에 비해 2∼5배 가량 높은 수준이다. 특히 최근 부도설이 나돌고 있는 재벌은 하나같이 부채비율이 유난히 높다.
정부는 우선 차입금이 자기자본의 5∼6배가 넘는 기업을 손비불인정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현행 세법상 지급이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손비인정(손금산입)해 주고 있으나 ▲비업무용부동산을 보유한 경우 부동산가액에 상당하는 지급이자 ▲차입금이 자기자본의 2배를 넘는 법인의 경우 타사주식 보유 등에 대해 해당 차입금의 지급이자를 손비불인정하고 있다.
현재 30개 기업집단중 자기자본대비 부채비율이 5배를 넘는 재벌집단은 진로(3천7백64.7%), 한라(2천64.7%), 뉴코아(1천2백24.4%), 한화(7백51.4%), 두산(6백88.3%), 해태(6백58.4%), 고합(5백90.1%), 한일(5백77.6%), 한진(5백55.9%), 기아(5백19.1%) 등 10개나 된다. 이밖에 부채비율이 4백%대인 재벌도 신호, 아남 등 7개에 달한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손비불인정 대상에는 이들 부채비율이 높은 재벌그룹의 계열사들이 거의 대부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30대 기업집단의 평균 채무보증비율이 자기자본의 56%(95년말)에 달하고 있어 채무보증을 차입금에 포함할 경우 차입금이자의 손금불산입 대상기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와함께 현재 채무보증잔액의 1%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설정하고 이에대해 손비인정을 해주고 있으나 앞으로 채무보증으로 인한 구상채권에 대해서는 대손충당금 설정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또 채무보증으로 인한 대위변제의 경우 대손금을 손비불인정하는 방안도 강구키로 했다.
한편 정부는 손비불인정 대상으로 선정되는 기업에 대해 자구노력에 필요한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따라서 올 정기국회에서 법인세법이 개정되면 1년정도의 유예기간이 경과한 후 이르면 99년부터 빚이 많은 기업은 세제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날 대통령 담화의 후속조치가 알려지기 무섭게 재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고 있는데다 이번 시책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흥정」이 임박한 시기에 제시된 내용이어서 흔들림없이 제대로 시행될 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있다.<이형주>
◎차입경영 개선 대책 청와대·재경원 반응/“만성적 고금리 해소 지름길˝ 강력 추진 시사청와대/재벌 수술위해 불가피… 금융개혁안 가속 기대재경원
○…정부가 대기업의 차입경영과 선단식경영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임기말에 걸맞지않을 정도로 강한 처방전을 제시하고 나선 것은 우리 경제의 구조를 보는 현경제팀의 기본시각에서 비롯된다. 시기적으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같은 인식이 싹터 올들어 한보, 삼미그룹 등이 잇달아 넘어지고 김인호 공정거래위원장이 경제수석에 임명되면서 급속히 탄력이 붙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주요 경제이슈중 하나는 금리문제였다. 불황속에서도 고금리현상이 계속되고 한보그룹과 같이 자금난에 빠지는 기업들이 많아지자 재계는 기회있을 때마다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자기 돈으로 기업을 하는 것보다 차입경영이 더 유리하게 되어있는 현재의 불합리한 제도를 고치지 않는한 만성적인 자금 초과수요가 불가피하고 그로인한 고금리현상은 해소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따라 차입금 이자에 대한 손비인정규모의 점진적 축소, 배당금에 대한 이중과세 방지 등의 대책을 물위로 떠올릴 준비를 해왔다.
차입경영을 가능케하는 재벌의 선단식 경영에 대해서는 공정위위원장 시절부터 강한 거부감을 가졌던 김수석의 등장이후 철퇴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채무보증제도와 부당내부거래때문에 한계기업들이 살아남고 불황기에도 구조조정이 안되는 폐단을 지적, 채무보증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김수석의 평소 소신이다. 기업경영 투명성확보를 위한 연결재무제표 작성 등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됐다.
올들어 재벌기업들이 잇달아 넘어지자 김수석은 『경제구조조정의 핵심은 기업 경영구조 개선이며 이 작업은 정권의 임기와 상관없이 강력히 추진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법개정 작업을 재경원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우원하>
○…재경원 당국자들은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구조 개혁대상으로 부실여신에 휘청거리고 있는 금융기관과 차입의존적이고 불투명한 기업경영 행태를 동시에 본격 수술키로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반응.
이에따라 지금까지 재계의 반발과 경기침체 등을 이유로 미뤄져온 기업집단 결합재무제표, 상호채무보증제한 강화, 동일계열 여신한도제 등 소위 「신재벌정책」시행에 탄력이 붙게 됐다는 평가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기업에 대해 철저한 대출심사와 사후관리를 하게 되므로 이를 통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측면도 강해 이날 담화에 실린 정책의지에 따라 금융개혁작업도 금융개혁위원회의 건의안과 맞물려 상당한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
재경원 관계자들은 그동안 타인자본에 대한 지급이자가 비용으로 처리되는 반면 자기자본 사용대가인 배당은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 등 불합리한 법인세제도 차입의존적 경영을 온존시키는 데 한몫 했다고 시인했다.
96년말 현재 국내기업들의 재무구조는 GNP의 16%를 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30대 재벌의 부채비율이 3백87%(96년말)에 달할 정도로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는 것.
한 고위관계자는 『일정 수준을 넘는 차입에 대한 이자를 손비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면서 『그러나 기업의 차입금 의존비중이 우리나라처럼 극단적으로 높은 나라도 없다』며 이번 조치가 부득이한 처방이라는 점을 강조.<임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