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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문화大賞] 사회공공부문 대상,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아담하고 소박…마을과 자연스런 어울림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거대건축이 주는 위압감을 피하기 위해 면적을 쪼개고 지하공간을 파 자세를 한껏 낮췄다. 연면적에 비해 소박한 인상을 주는 전시관 전경.

전시관 진출구에 자리잡은 정자와 연지(蓮池)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고산의 고택 ‘녹우당’으로 자연스레 이끄는 역할을 한다.

김상식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전남 해남읍 연동리에 위치한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을 관람하는 과정은 해남 윤씨의 집성촌 연동마을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백련지와 말무덤을 지나면 곧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건물의 첫 인상은 아담하고 소박했다. 연면적 1,800여㎡의 단층 한옥건물이라기에 고래등 같은 기왓집을 연상했지만, 이 같은 생각은 틀렸다. 결코 동일한 면적 건물이 주는 위압감은 발견할 수 없다. 건물의 3분의 1만 지상으로 올리고 나머지는 지하공간을 파 조성했기 때문이다. 또 한옥으로 넓은 공간을 구성할 경우 바닥이 넓어지면 지붕도 높아지게 된다. 건물의 지붕이 지나치게 높아져 마을 전체의 하늘선 마저 망치게 된다. 높다란 기와지붕이 주는 무게감도 문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면적을 3개 동으로 잘라내 자세를 한껏 낮췄다. 건물의 조형미보다 마을과의 전체적인 조화를 먼저 고려했던 설계자의 혜안이 돋보였다. 3개로 나뉜 건물은 각각 사무동과 전시관, 교육관으로 구성됐다. 건물은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고려해 배치됐다. 진입회랑에서 아트리움으로, 1전시실 2전시실을 거쳐 외부 공간까지 이르는 움직임이 물처럼 자연스레 흐른다. 메인 건물인 전시관은 녹우당 사랑채와 똑닮은 'ㄷ'자로 지었다. 건물의 배치로 인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안마당은 비를 피하기 위해 유리를 덮었다. 천창(天窓)으로 빛이 쏟아지는 아트리움이다. 빛이 전시실로 지나치게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부에는 태양광 집열판을 얹어 간접채광을 유도했다. 이를 통해 전시실에 사용되는 냉난방 에너지의 70%를 확보하게 된 것도 수확이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아트리움은 외부 자연을 내부 공간으로 불러오는 한편 지상 한옥과 현대적 느낌의 지하 전시공간의 자연스런 매개체로도 사용된다. 1층 진입회랑을 통해 특별전시실을 관람하고 나면 계단을 통해 지하 전시실과 통하는 진입홀에 닿게 된다. 지하공간은 완연한 현대건축이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 전시실의 특성을 고려했다. 하지만 전통건축과의 연결을 간과하진 않았다. 벽은 막돌쌓기로 마감됐고, 엘리베이터의 외부 역시 결이 있는 목재 느낌으로 손질해 콘크리트의 질감을 지웠다. 아트리움과 연결된 경사진 연결복도를 통해 1전시실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관람을 즐길 수 있다. 아래로 경사진 연결복도를 걸어 어두운 전시공간으로 진입하는 경험은 과거로의 체험 여행의 의미를 부여한다. 1전시실을 나오면 다시 아트리움이다. 고산의 벗 중 하나인 대나무가 심어져 있는 외부 자연을 바라 보며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이어진 2전시실로 진입해 다시 윤씨 집안의 보물들을 관람한다. 전시실을 나오면 외부 공간과 연결된 진출구가 보인다. 썬큰 형식으로 조성돼 지상과 다름없는 공간감이 느껴진다.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오면 대나무, 소나무가 심어진 자연을 통해 언덕 위 오브제인 정자에 닿는다. 정자 옆으로는 마을 초입에서 봤던 연지가 조그맣게 조성돼 있다. 다시 녹우당으로의 여행이다. 이번엔 500년된 역사를 지닌 진짜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이다. 느린 걸음으로 녹우당과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지나 고산의 5대조인 어초은 윤효종 선생의 묘, 울창하게 펼쳐진 비자나무숲의 내음까지 만끽하고 나서야 이 여행은 마무리가 된다.
"집·대지·연못 배치 등 흐트러짐 없도록 노력"
■설계자 김상식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상을 타서 내 명예를 높이는 것보다 기쁜 사실은 건축주인 해남군 측과 고산 선생의 14대 종손인 윤형식씨가 결과에 대해 너무나 만족해 했다는 것입니다"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설계자인 김상식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다. 젊고 신선한 감각을 가진 후배들이 받아야 할 상을 가로챈 기분이다"며 조금은 겸손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이미 광주시청사 설계를 통해 2004년 건축문화대상 비주거부문 대상을 수상한 그였다. 뿐만 아니다. 사촌여동생이자 사무소 공동대표인 김용미 대표 역시 서울 남산국악당으로 2009년 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런 큰 상은 한번만 받아도 족한데 우리 사무소에서만 3번의 대상이 나왔다. 운이 좋았다" 금번 대상 수상작인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과 김상식 대표와의 인연은 조금 특별하다. 새로운 전시관이 지어지기 전 사용되던 구(舊) 전시관 건물 역시 25년여 전 김 대표가 설계했던 것. 그는 "녹우당의 품격과 대지의 기운을 해치지 않고 마을 전체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당시에도 엄청난 고민을 했었다. 다른 이들보다 한번 더 고민할 기회를 가졌기에 이 건물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좀더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나 역시 '이거야 말로 내가 해야 하는 작품'이라고 확신했다"라며 미소지었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건물과 마을 전체의 조화였다.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집의 형태, 대지, 산과 연못의 배치 등 모든 것들이 전통적인 요소를 간직한채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걸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런 생각 아래 지어진 전시관은 혼자만 오롯이 잘난 주인공적인 건물이 아니라 마을의 조화로움을 한층 높여준 건축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5살 젊은 시절부터 40여 년간 건축의 길에 매진해온 김 대표가 추구하는 건축은 '군더더기를 덜어낸 실용적인 건축'이다. 건축가의 스타일도 좋지만 주위와 잘 어울리고 합리적인 건축이 좀 더 의미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욕심을 덜어내는 법을 배운 셈이다. 그는 "젊은 시절 야심차게 설계했던 건물들을 나중에 돌아보면 첫 설계 때와 많이 달라진 채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용자를 생각하지 않은 공간 배치와 건물 설계는 결국 설계자, 건축가의 욕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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