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고 인간과 소통하는 학문이다. 분야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의 인문학은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분업·전문화로 사회와 거리감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서점에서는 인문학 서적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렵지 않게 인문학 대중강좌를 찾아낼 수 있다"고. 사실 그렇다. 스티브 잡스와 인문학의 인연이 화젯거리가 되기 이전부터 인문학의 대중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하고자 노력한 개인과 단체가 적지 않다. 한국연구재단 같은 기관에서도 '인문학 대중화 사업'을 공모하고 '인문주간'같은 행사를 주최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국의 인문학은 한국 사회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대학에 몸담고 있는 인문학 연구자들만을 생각해본다면 전반적인 상황이 그런 것 같다. 학술지에 발표하는 논문의 독자가 논문 심사자나 해당 주제의 후속연구자 정도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고, 사회와의 소통을 염두에 둔 활동이 학자로서의 올바른 궤도에서 벗어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물론 그 이유는 대단히 복합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분업화가 중요한 요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하다. 사회 전체로 보면 대학은 전문적인 지식을 생산하거나 전수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대학 안에서는 세분화된 전공영역이 각기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분업구조 아래서 각각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사회나 대학에서는 각종 평가 시스템을 구축한다. 평가는 수치로 표시될 수 있어야 객관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평가기준은 대체로 개별 연구자가 논문 몇 편을 썼고, 얼마나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렸는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분업화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효율 면에서 특히 그러하다. 때문에 학문영역에서도 개별 전공영역의 깊이를 더한 공적이 적지 않다. 대학의 구성원들이 본업에 소홀할 수 없도록 만드는 역할도 한다. 그렇지만 분업화, 그리고 그로부터 유래하는 전문화는 학문영역 간, 그리고 사회와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단점이 있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에는 학문 자체의 기반을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의 인문학이 대중화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한가지 방법일 수 있을 듯하다. 대중화가 인간 또는 사회와의 소통 자체일 수는 없겠지만 대중화를 통해 그러한 소통으로 가는 길은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강좌에 참여하거나 일반 독자를 위한 교양서를 집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부 전공을 넘어서는 관심과 지식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학문 분야나 사회 전반의 관심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인문학과 인간, 인문학과 사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화 힘써야 자기발전도 가능
이런 관점에서 접근할 때 인문학의 대중화는 대학 또는 학문의 사회적 기여를 위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또 흔히 인문학의 대중화를 지칭하는 '사회 확산사업'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한 것일 수 있다. 인문학 자체의 발전을 목표로 설정했을 때 인문학의 대중화란 대학 또는 전공영역에서 완성한 인문학을 사회 또는 일반인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이 인간 및 사회와의 관계를 복원해 자기발전을 모색하는 방안이 되려면 인문학의 대중화에 이전보다 섬세한 기획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