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복수노조 노사정 합의 존중을


최근 10년 동안 노사 간에 가장 많이 회자된 이슈 중 하나가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를 둘러싼 논쟁일 것이다. 이 문제는 지난 1997년 노동법 개정 때 복수노조 설립제한 규정을 삭제함과 동시에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적어도 법적으로는 이미 14년 전에 결착 난 사안이다. 노사 간 이해관계 대립으로 제도 시행이 13년 동안 유보되다 노조전임자 대신 타임오프제도가 도입돼 작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복수노조도 올해 7월부터 전면 허용을 앞두고 있다. "창구 단일화 위헌" 은어불성설 이 시점에 또다시 복수노조 및 노조전임자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계 및 야당 일각에서는 복수노조를 전제로 한 창구 단일화가 사실상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삼권의 본질을 침해하므로 위헌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해 향후 노사관계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법제도가 잘못된 경우에는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노동법제는 수많은 근로자들과 기업이 적용대상이라는 점에서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타임오프제도 및 복수노조 문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노사정 합의'라는 지난한 과정과 오랜 유예기간을 거쳐 도입된 것인 만큼 당사자들은 이러한 합의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합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법 해석의 차원을 넘어 동기가 의문스럽다. 타임오프제도는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잘못된 노사관행을 시정하기 위해 도입, 작년부터 시행해 조금씩 정착돼가고 있다. 복수노조체제를 수용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급 금지가 정당한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되고 복수노조를 전제로 한 창구 단일화가 노동삼권을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히 복수노조 허용은 그동안 노동계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현안이었던 만큼 이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에 창구 단일화를 빌미로 개정 운운하는 것은 노동계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복수노조체제에 대한 의지가 과연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단적 노사관계의 역사가 미천한 탓도 있지만 과거에는 정당한 노조활동보다 경제논리를 앞세운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노동법제에는 얼마 전까지 '삼금(三禁ㆍ제3자 개입금지, 정치활동 금지, 복수노조 금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당하게 노조활동을 제한하는 규정들이 존재해왔다. 이제 다음 달이면 삼금 중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복수노조 설립제한도 철폐돼 노동조합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게 된다. 복수노조 허용이 향후 노동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기존 노동현장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노사 간 갈등과 사회적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것이 미국ㆍ캐나다 등에서 도입하고 있는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다. 이들 나라의 법체계가 우리나라와 다르지만 복수의 노조가 병존하는 경우 다수가 가입한 노조에 교섭대표권을 부여하는 것이 노동삼권을 보장하고 있는 현행 헌법에 위반되는지 의문이다. 노동현안, 政爭 치달을까 우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같이 처음부터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노사가 합의하면 소수노조도 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노동조합은 소속의원 20인 이상의 정당에 한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국회법에 비하면 정당보다 유리한 교섭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정치인들도 노동법 개정에 동참한다고 하니 자칫 명분도 실리도 없는 노동현안이 정쟁(政爭)으로 비화될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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