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신규 발급받는 경우 원칙적으로 해외 인출이 되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해외 출금이 가능하도록 돼 있는 카드 표준약관을 고객이 원하는 경우에만 현금인출을 허용하는 쪽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카드 복제를 통한 해외 현금인출 사고를 막는다는 차원이지만 소비자의 편익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17일 "복제가 아예 안 되는 집적회로(IC) 카드로만 현금이 인출되는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복제가 손쉬운 마그네틱(MS) 카드 기반인 곳이 대부분이라 국내에서 복제한 카드로 해외에서 현금을 빼내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새로 카드를 발급받게 되면 해외 인출이 되지 않도록 카드 표준약관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금인출을 원하는 고객은 발급 때 따로 요구하면 된다"며 "(해외에서 현금인출이 금지돼도)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돼 큰 불편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당국은 이미 발급된 카드에 대해서도 카드사나 은행이 고객에게 문의해 해외 지급정지를 유인하도록 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현재 카드사나 은행을 통해 발급되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는 IC칩과 MS선이 모두 있는 겸용카드다. IC카드가 보편화되지 않은 국가를 방문할 경우 출금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카드 복제 일당들은 이를 이용해 국내에서 카드를 복제한 후 대만 등 해외에서 돈을 빼가는 수법을 쓰고 있다. 범죄에 사용되는 카드복제기로는는 MS카드만 복제가 가능하다. 당국의 약관개정이 이뤄지면 내년부터 카드 발급시 고객의 별도 요구가 없을 경우 해외에서 현금인출이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대응이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한 불법 카드 복제는 은행이 예방책을 마련해야 할 사안인데 소비자 불편을 초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당국 편의적 발상"이라며 "결국 은행들이 자사 ATM에 불법복제기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근본적인 대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