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의 잇단 부도여파 속에서 전국은행연합회가 「여신심사체계 선진화방안」을 마련한 적이 있다. 14개 은행의 실무자가 모여 금융권 전체의 경영악화를 막아보자는 자구책으로 내놓은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다.이 과정에서 은행연합회는 성장업종과 사양업종을 구분, 특정업종이 사양업으로 분류될 경우 여신심사를 강화하여 대출한도를 줄여나가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전기 가스·석유정제·화학제품·기계제조 등의 업종은 성장산업으로 분류하고 광업·섬유제품·의복산업·주택건설·신발·목재업 등은 사양산업으로, 기타 산업은 현상유지업종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섬유가 사양산업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점이다. 섬유가 어떻게 사양산업인가.
최근들어 섬유업종이 부가가치가 낮아지고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섬유가 어려운 것은 사양산업이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그 원인은 과잉생산과 과당경쟁에 있다.
잘 알다시피 섬유는 일찍부터 우리나라 근대화과정에서 수출정책을 주도해왔던 효자산업이다. 지난해 섬유는 국제수지면에서 1백23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함으로써 외화가득에 있어서는 「아직도 내 사랑」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섬유는 「형상기억합금」과 같은 신소재나 「고감도섬유」 등과 같은 첨단부문이 내재되어 있으며 패션, 디자인, 어패럴 등의 부문은 고부가가치임을 자랑한다.
선진국의 경우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규정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의 경우 섬유를 국책산업으로까지 육성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섬유 전체를 뭉뚱그려 사양산업이라고 하는 발상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다.
천만 다행스런 것은 은행연합회가 뒤늦게나마 태도를 바꾸어 이들 업종의 사양화 지정에 대한 언론보도 자체를 부인하고 나선 일이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섬유와 건설은 영원하다」는 논리는 이미 진부할 정도로 되풀이되어왔다. 실제로는 오늘날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개성화, 고급화, 차별화가 두드러지는 것도 이들 부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섬유와 건설이야말로 사양업종은 커녕 영원한 성장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