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이하 출총제)의 대안으로 순환출자금지를 추진중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순환출자금지는 시장개혁에 배치되는 제도”라며 규제 반대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몇 개월만에 180도 달라진 공정위의 입장은 정부정책의 신뢰성과 예측가능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순환출자금지 논란도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10일 본지가 지난해 10월 19일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 주최로 개최된 ‘기업소유ㆍ지배구조 개선’ 심포지엄자료를 확인한 결과, 당시 이동규 공정위 경쟁정책국장(현 경쟁정책본부장)은 “순환출자를 직접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시장자율규제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참여정부) 시장개혁 정신과는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고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국장은 순환출자금지는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규율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국장은 공정위 조직개편 후에도 대기업집단 정책을 총괄하는 공정위의 핵심요직인 경쟁정책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출총제 대안을 논의하는 시장경제선진화 태스크포스에서 대기업집단 분과 간사도 맡고 있다. 이 국장의 발언은 김진방 인하대 교수가 이날 순환출자금지 제도를 도입하자고 기조발제에 나서자 토론자로서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채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이 국장이 공정위 대표로 직접 참석해 순환출자금지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또한 “순환출자금지가 기업집단 소유구조의 핵심고리를 형성하는 ‘신규 출자금지’ 또는 ‘기존의 의결권 제한’을 수반하게 된다” 며 “(기업집단이) 핵심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어서 “현 기업집단체제에서 순환출자금지를 수용하기 곤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토론에서 이 국장은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이 추진 중인 상태여서 순환출자금지 제도를 입법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출총제 대안 모색에 나서기로 한 이상 이 주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순환출자금지가 ▦참여정부 시장개혁 방향과 일관성이 없고 ▦기업들도 수용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공정위가 분명하게 견지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 본부장은 “3가지 이유로 당시 반대한 것은 맞지만 향후 출총제 대안을 논의할 때 순환출자 검토 가능성은 열어둔 것으로 기억한다” 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계는 공정위의 오락가락하는 정책기조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기업을 정책실험의 대상 정도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