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박홍진의 할리우드 21] 클랜턴 후손 조상 명예회복 운동나서

'O.K. 목장의 결투' 내용 왜곡으로 피해 추진위 구성50년대 할리우드 양대 액션스타였던 버트 랜카스터와 커크 더글러스가 연기대결을 벌인 수작 서부극 'O.K.목장의 결투'(존 스터지스 감독, 1957)는 구원을 둘러싼 두 집안간의 싸움이었다. 이 결투는 보안관들인 와이엇 어프 형제들이 소도둑떼인 클랜턴형제들에 대한 법집행 행사로 알려져 있으나 많은 서부사 학자들은 그 보다는 법집행을 내세운 두 가문의 쌓이고 쌓인 증오의 폭발로 보고 있다. 그런데 요즘 뒤늦게 클랜턴 후손들이 가문의 명예 회복운동에 나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조상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사람은 사업가 로버트 클랜턴과 배우 테리 클랜턴. 이들은 "진짜 O.K.목장의 결투는 완전히 서부영화의 내용처럼 변질돼 어프형제들은 정의롭고 클랜턴형제들은 무법자로 정형시켜 놓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이런 틀에 박힌 사고방식 때문에 클랜턴가는 소도둑떼(역사적으로 혐의는 있었지만 유죄판결을 받은 바 없다는 것)요, 결투에서는 겁이 나 내빼거나 무참히 당한 패배자로 알려져 있다"고 하소연했다. 두사람에 따르면 클랜턴가는 왜곡된 역사의 피해자라는 것. 이들은 "1880년대 당시 정의란 되는대로 집행됐다"면서 "와이엇은 '더티 해리'처럼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식으로 법집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서부시대의 마지막 전설로 남아있는 O.K.목장의 결투는 1881년 아리조나주 톰스톤의 O.K.목장 마구간에서 일어났다. 서부시대의 마지막 명보안관이었던 와이엇 어프 등 어프가 3형제와 와이엇의 친구로 폐병을 앓는 술꾼 건맨이자 전직 치과의사인 닥 할러데이 대 소도둑 빌리 클랜턴 등 클랜턴 3형제와 그들의 친구 맥로리형제가 맞붙은 사건이었다. 두 집안간에 30여발의 총알이 오가고 3명이 죽고 2명이 부상했는데 결투시간은 달랑 30초. 이 결투는 명장 존 포드가 감독한 흑백서정시 같은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me. 1940)로 먼저 영화화됐었다. 나는 1987년 10월 취재차 툼스톤을 방문한 적이 있다. 툼스톤은 1880년대초 은광이 발견되면서 한때 총성과 주정과 술집여자의 교성이 끊이지 않던 붐타운이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붓힐 묘지에는 와이엇과 닥의 총에 맞아 죽은 빌리 클랜턴등 3명이 묻혀있다. 결투가 벌어진 마구간은 굉장히 좁았는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실물크기의 9명의 건맨 인형과 만나게 된다. 적들끼리 바로 코앞에서 서로 마주 보며 총질을 했을 테니 간도 큰 친구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로버트와 테리의 주장 일부에 대해서는 여러 서부사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O.K.목장의 결투를 법집행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 정치적대결로 정의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클랜턴가는 목축업집안으로 남북전쟁시 목축업자들은 남군편이었던 반면 도시인들인 어프가는 북군편. 이들은 전쟁후에도 서로를 증오해왔고 이런 정치적 배경에 집안간 원한이 섞여들며 결투가 발생했다는 해석이다. 어쨌든 로버트와 테리의 적극적인 명예회복운동으로 클랜턴화수회결성추진에 지금까지 1만5,000여명이 참여의사를 밝혀왔다고 한다. 한동안 클랜턴의 후손임을 부끄러워하던 사람들이 이제 떳떳이 성이 클랜턴임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LA미주본사 편집위원ㆍ미LA영화비평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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