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전수거물관리시설(원전센터) 건설을 두고 뚜렷한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16일 “원전센터 부지선정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예비신청 마감일인 15일 자정까지 신청서를 낸 지자체가 한 곳도 없었다”며 “앞으로 관계기관 협의 및 여론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쳐 오는 10월 중 추진방안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중재안인 ‘사회적 협의(공론화) 기구’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고려하고 있다며 가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전북 부안의 단독 주민투표도 사실상 어려워졌음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주민ㆍ자치단체 등과 협의과정을 거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번 원전센터 유치과정에서 정부는 나름대로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다며 주민청원, 지자체장 신청, 주민투표 등 가능한 모든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제2의 부안사태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조석 원전사업지원단장은 “당초 몇 개 지역의 지자체는 예비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하지만 지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이어서 주민투표에서 부결될 경우 입게 되는 타격을 생각, 자치단체장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는 ‘우리 지역에 핵폐기장 건설은 안된다’는 지역 여론에 떠밀려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 절차적 적합성으로 보면 이번보다 더 나은 것을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원전센터 문제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올 연말까지의 부지확정이 물 건너감에 따라 당장 원전수거물 처리가 걱정이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울진 원전부터 오는 2008년에는 임시보관시설이 넘친다. 원전센터 건설에는 최소 4년이 필요하므로 4년 뒤 원전수거물 대란은 피할 수 없다.
결국 정부는 당분간 부안 카드를 버리지 않은 채 주민투표 실시를 모색하고 동시에 시민단체와의 합의를 위해 공론화 과정을 밟아가는 ‘양다리 걸치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 장관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향후 추진과정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여론을 더 들어보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분석된다. 여론수렴 결과 시민환경단체의 요구인 국내 원자력정책의 재검토까지 나아갈지도 관심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