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영어공용화 시대

남상조<한국광고단체연합회 회장>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고종의 70세 진하사절(進賀使節) 수행원으로 넉달 간 중국을 다녀오고서 큰 충격을 받았다. 청은 변방의 오랑캐 소수 민족이 세운 나라이기에 적대적 감정이 깔려 있었는데 막상 유럽과의 교류로 접하고서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이른바 실학사상의 전도사가 된 연암은 “조선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지구촌 시대를 맞아 이제는 영어 공용어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우선 관광 특구로 개발되는 제주도나 인천을 비롯한 몇몇 경제 특구만이라도 영어를 함께 쓰자는 절충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영어열풍이 전국을 휩쓸어 유치원부터 영어과외를 시작하고 대학생은 해외 어학연수를 필수과정으로 밟고 있으며 심지어 발음교정을 위한 혀 수술까지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영어를 모국어나 공용어로 쓰는 인구는 8억명 정도이며 전세계 56개 영어 사용국 가운데 선진국은 미국ㆍ영국ㆍ캐나다ㆍ호주 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기구의 85%가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으며 심지어 중동 산유국 중심의 석유수출기구(OPEC)도 영어가 유일한 공용어이다. 특히 인터넷이 제공하는 학술, 문화, 기술 정보의 80% 정도가 영어로 돼 있기에 영어를 모르면 ‘지식 빈민’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주 필자는 태국 파타야의 아시아광고연맹 이사회와 인도네시아 발리의 미디어 포럼에 연이어 참석하면서 우리도 이제는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회의 어젠다나 논리보다는 영어능력이 우선시되므로 몇몇 영어 공용어 국가가 회의를 주도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영어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교육열 세계 1위인 우리나라도 영어에 친숙하기 위해 15만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어학연수차 나가 있고 국내에서도 영어과외가 극성이라 사교육비는 천문학적 수치이다. 그런데도 토플 성적이 세계 119위로 중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 낮은 것을 보면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한자 공용어 시대를 살았고 일제 시대는 일본어가, 그리고 미군정 시대는 영어가 공용어였다. 이번 기회에 어쩌면 세계 도약을 위해 영어에 한번 도전해봄 직하다. 그러나 영어 공용화의 전제 조건은 국어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것이다. 지난해 문화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국어실력은 100점 만점에 30점이 채 안되며 해마다 국어점수가 떨어지고 있다고 하니 우선 내부정비부터 해야 하겠다. 유능한 통역가나 번역가는 외국어보다 우리말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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