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산업현장도 넛지가 필요하다


화장실 소변기에 그려진 실물 크기의 파리 한 마리. 소변기에 그려진 이 파리 그림 하나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남성들의 집중력을 높여 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 양을 80%나 줄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화장실 청소의 수고를 덜기 위해 출발한 이 아이디어는 이후 전세계 공공건물로 확산됐고 남성의 심리를 분석해 문제를 해결한 본보기로 널리 알려졌다.

한해 9만명 산업재해로 피해 입어


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넛지효과(nudge effect)'라고 한다. '넛지'의 사전적 의미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주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이를 테면 계단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옆에 계단을 피아노 건반처럼 디자인한다거나 쓰레기 무단투기 지역에 아름다운 화단을 만들어 쓰레기 투기를 막는 식이다. 강요나 강압에 의한 방식이 아니라 이해와 배려에 바탕을 두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을 이끄는 것이다. 넛지효과는 정책뿐 아니라 사회 공익적 요소, 디자인, 마케팅,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사고의 위험이 언제나 존재하는 일터에서도 '넛지효과'는 필요하다. 근로자와 사업주가 안전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얼마나 효과적일까.


최근 밀폐공간에서 질식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경남 거창의 한 양돈농장에서는 정화조 배관수리를 하던 작업자가 유해가스에 질식돼 쓰러졌다. 작업자가 쓰러진 것을 보고 구조하러 들어간 농장주 부인도 역시 질식으로 쓰러졌다. 이 사고로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얼마 뒤에는 충남 당진의 제철공장에서 보수작업을 하던 근로자 5명이 유해가스에 질식,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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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공간 질식사고는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5년간 70명이 넘는 근로자가 밀폐공간에서 목숨을 잃었다. 밀폐공간 질식사고는 사업주나 근로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작업 전에 산소나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 했더라면, 작업 중에 환기를 시켰더라면, 그리고 밀폐공간에서 쓰러진 작업자를 구조할 때 보호장비를 착용했더라면 불행한 사고는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발적 안전 실천할 환경 조성을

산업재해는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작업환경이나 근무 형태, 작업시간뿐 아니라 근로자의 심리상태와 날씨, 기온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이나 조건의 변화를 고려한 안전보건활동이 필요하다. 즉 근로자의 마음까지 배려하는 섬세한 안전보건 활동이 추진돼야 한다. 자기가 취급하는 물질, 작업공정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안전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해 9만여명의 재해자, 연간 18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액.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터에서 누구나 안전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자연스럽게 안전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넛지효과'가 필요하다. 이제는 산업현장에도 파리 그림과 같은 아이디어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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