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6일] <1362> 키시네프 포그롬


1903년 4월6일, 멀쩡한 시민들이 집단적 광기에 휩싸였다. 폭도로 돌변한 이들은 특정 민족을 보는 대로 공격했다. 경찰과 군대, 정부 관리의 수수방관 속에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관동대지진(1923년) 당시의 조선인 대학살을 연상케 하지만 발생시점이 20년 빠른 이 사건은 무엇인가. 키시네프 포그롬(Kishinev pogrom)이다. 학살 대상은 유대인. 포그롬이라는 단어 자체가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약탈과 학살을 뜻하는 러시아어다. 발단은 악의성 오보. 러시아 극우 민족주의 신문들이 오리무중에 빠진 6세 아동 살해사건의 범인이 유대인으로 추정된다는 기사를 내보내자 키시네프(현재 몰도바 공화국의 수도)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사흘간 계속된 폭동에서 희생된 유대인은 49명. 592명이 중경상을 입고 가옥 700여채가 불에 탔다. 얼마 뒤 진짜 범인은 소년의 친척으로 밝혀졌으나 반성은 없었다. 오히려 반유대인 정서가 확산되고 비슷한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키시네프 포그롬은 유대인 박해 사례의 하나로 끝나지 않고 20세기 역사에 파장을 미쳤다. 러시아 유대인 250만여명이 신세계로 이주해 미국 유대인 사회가 급격히 커졌다. 남은 유대인들은 반정부 투쟁을 위해 사회주의에 빠져들어 결국 공산혁명으로 이어졌다. 한반도의 역사도 영향을 받았다. 학살 소식에 가슴을 쳤던 미국의 유대자본가 제이콥 시프는 일본이 러일전쟁의 전비 조달을 위해 발행한 2억달러(요즘 가치 209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전액 지급 보증,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황궁에 초청돼 훈장을 받았다. 20세기 역사를 가른 키시네프 포그롬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로 바뀐 채 팔레스타인에서는 차별과 증오의 피가 여전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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