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L벨트'의 꿈과 현실] 허상 가득한 외자유치

자유없는 '프리존' 검은머리만 북적<br>외국인 "공장설립 원스톱 아니라 텐스톱"<br>삽질도 못한채 개발계획만…보여줄게 없어<br>투자유치 해도 "없던일로" 할지몰라 불안


부산ㆍ진해 경제자유구역 남쪽의 화전지구. 오는 2010년까지 73만평의 첨단산업ㆍ상업용지가 들어설 곳이다. 최근 이곳은 “우리 지역을 개발예정지에서 제외시켜달라”는 주민들의 반발집회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개발보상금을 더 타내기 위한 의도적인 움직임이라는 게 구역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구역 서편의 57만평 마천지구는 개발대상지에서 제외된 주민들이 “우리 지역도 개발해달라”고 아우성이다. 구역 동쪽의 200만평 명지지구는 최근 28만평의 쓰레기 매립지가 뒤늦게 발견돼 개발작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상황이 이처럼 복마전으로 전개되고 있는데도 구역청 관계자들은 최근 외자유치를 위해 싱가포르 투자가들을 초청했다. 그러나 투자가들의 반응은 “무얼 어디에다 지을 겁니까”라는 차디찬 비웃음이었다. 첨단 물류산업지구를 꿈꾸는 인천경제자유구역. 마이크로소프트(MS), 휴렛팩커드(HP) 등을 꼬드겨 10억달러 규모의 디지털게임영상단지(DEC)를 설립한다고 자랑했지만 물거품이 됐다. 하버드대학을 유치한다던 꿈은 물 건너 중국으로 가버렸다. 화교자본 100억달러를 끌어들여 대형 테마파크를 조성한다고 했지만 연이은 개발계획 게이트가 골칫거리다. ‘행담도 게이트’로 불거진 S프로젝트의 외자유치 문제는 이 같은 외자유치의 허상과 문제점이 먼저 드러난 사례에 불과할지 모른다. 동북아시대위원회 등은 싱가포르 200억달러를 포함, 앞으로 최소 300억달러 투자유치를 계획했지만 정부 내에서조차 “꿈 같은 얘기”란 푸념이 나온다. 추진 당사자들은 “없던 일로 하자”는 얘기가 언제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전국이 개발계획의 들뜬 꿈에 젖어 있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손님은 없고 주인만 시끄러운 잔칫집이다. 상하이ㆍ싱가포르ㆍ두바이처럼 각종 혜택과 서비스로 외국자본의 ‘천국’을 섣불리 약속했으나 기초적인 삽질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칫국만 마시는 형국이다. 당장 투자를 유치하고 싶어도 보여줄 것이 없다. 경제자유구역 등의 관계자들조차 “파워포인트 자료와 ‘개발예정지’란 간판만 걸린 공사현장만 보고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미 외국 투자가들은 수년 전 푸둥경제특구에서 자기부상열차가 개통하는 것까지 봐왔다. 팔 땅조차 없이 유치전을 펴고 있는 한국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다 보니 어쩌다 들어오는 해외 투자가는 반갑기 그지없는 손님으로 ‘칙사’대접하기 바쁘다. 행담도 개발 프로젝트 역시 외환위기 이후 해외 투자설명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던 설움을 겪다 보니 싱가포르 이콘사가 구세주로 여겨졌고 상상도 못할 보증지원이 제공됐던 것이다. 넘쳐나는 행정절차(레드 테이프ㆍRed Tape)는 과연 우리가 손님맞이 준비가 돼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한국 투자에 관심을 가졌던 한 외국 투자가는 한국을 돌아본 소감을 이렇게 토로했다. “경제자유구역에 공장을 설립하려 했더니 재정경제부가 지정한 은행에서 외국인투자인가를 받아야 하고, 산업자원부에 산업단지 신청을 해야 하며, 일선 시군구에 건축허가, 등기소에서 부동산 등기를 마쳐야 한다더라. 또 세금감면 신청을 위해 다시 재경부를 찾아야 하고, 일선 국세청에서 법인설립을 신고하고, 지방노동청에서 취업규칙 신고절차를 마쳐야 한다니….” 말 그대로 원스톱(one-stop)이 아니라 ‘텐스톱(ten-stop)’을 거쳐야 간신히 공장 하나 지을 수 있을 정도다.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끼리의 밥 그릇 싸움은 더 심각하다. 부산 지역에서 건설되는 신항만은 수개월째 부산과 경남간 대립으로 제 이름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두바이ㆍ상하이 등이 원스톱을 넘어 ‘원맨’ 서비스까지 내놓으면서 “레드 테이프는 없습니다 레드 카펫만 제공합니다(Red Carpet, No Red Tape)”고 자부하는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외국인들을 끌어오겠다며 내세운 지원책은 한숨만 나오게 한다. 서남해안 개발을 위한 L벨트 프로젝트의 초기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경제특구는 그 특수성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50년간 법인세 면제’(두바이 제벨알리 특구) 등 해외의 메가톤급 지원책 앞에 3년간 법인세 감면이란 경제자유구역의 유인책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특구를 만든다면서 왜 국내 기업들은 들어오려고 하지 않느냐”는 투자자들의 질문에 구역청 관계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정부 관계자들은 “우리가 개발계획을 세운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투자실적을 요구하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이유 있는 항변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볼멘 소리만 하고 있을 것인가. 맞이할 손님이 적다면 애당초 수십 조원 들인 잔칫상보다는 먹을 거리가 있는 조촐한 잔칫상이 남은 장사를 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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