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김지하 39년 만에 누명 벗었다

민청학련 사건 재심서 무죄… '오적 필화' 는 선고 유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아무 생각도 안납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잖아요."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 짙은 회색 코트를 걸치고 검은색 목도리를 두른 노(老)시인이 법정으로 들어섰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그는 재판부를 기다리는 동안 방청석에 앉아 정면을 응시했다.

"재심 신청인이자 피고인 김영일, 일명 김지하씨 앞으로 나오세요." 침묵을 깨고 들어온 재판부가 부르자 김씨의 지팡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1970년대 '민청학련'사건과 시(詩) '오적(五賊)' 필화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김지하(71ㆍ사진) 시인이 39년 만에 죄를 벗는 순간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원범 부장판사)는 4일 대통령긴급조치4호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심을 받은 김씨에 대해 사실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반국가단체로 지목된 민청학련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며 "처벌의 전제가 된 대통령긴급조치4호는 헌법에 반해 무효이므로 김씨의 행위도 죄가 안 된다"고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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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 필화'로 반공법을 위반한 혐의에 대해서는 "사회적 부조리를 문학작품 형식으로 비판한 것으로 이는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한 것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지극히 정상적인 예술적 표현"이라며 "다만 재심 대상이 아니어서 유ㆍ무죄 판단 대신 양형만 다시 판단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오적 필화에 대해 내린 형은 징역 1월에 선고유예다. 판결 확정 이후 한 달 동안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김씨는 유신 헌법을 비판하고 독재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큰 고난을 당했다"며 "당시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진실로 사죄의 뜻을 전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선고가 끝나고 재판부로부터 선고 요약본을 받아 든 김씨는 한동안 피고인석에 두 손을 모으고 서 있기도 했다. 법정 밖에서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적'사건으로 풍자시를 몇 십 년을 못 쓰고, 돈도 한 푼 없어 자식들 교육도 못 시켰는데 선고유예 받아 아쉽다"며 "국가의 적절한 금전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신 시절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꼽히던 김씨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구속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투옥됐다. 이후 국제적으로 구명운동이 전개되면서 10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썼다가 재수감돼 6년간 복역했다. 김씨는 2010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10월31일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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