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설] EU의 개정조약
파이낸셜타임스 6월25일자
유럽연합(EU)이 통합헌법 대신 법안 형태의 ‘미니조약’에 합의한 것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가입국들은 갖가지 선언만 내걸며 자국 이익 챙기기에 바빴다. 하지만 EU조약은 이름처럼 단순하지 않다.
이번 조약은 혼란을 딛고 합의를 이뤘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폴란드가 강력하게 반대한 이중다수결제도도 오는 2017년까지 미뤄졌다. 다행히 이제는 27개 가입국들이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게 됐다.
이번 협의과정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설득력 있는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강대국과 약소국들간의 이해관계를 보살폈다. 또 개정조약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 기존 내용들을 흡수했다. 최소한의 양보만을 고집하는 프랑스ㆍ네덜란드ㆍ영국의 동의도 얻어냈다. 반면 이번 조약으로 최대 수혜를 바라는 약소국들에는 욕심을 버리고 차선책을 수용하도록 설득했다.
이번 개정조약의 최대 승리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다. 그는 과하게 요구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는 프랑스 지도자로서 통합 유럽을 지지하면서도 철저히 자국 이익을 관철시켰다. 반면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방어적인 자세는 서툴러 보였다. 다행히도 이번 사안을 국민투표로 가져가지는 않게 됐다.
지금부터의 문제는 EU 조약에 따른 모호한 직책을 두고 가입국들이 자리싸움을 벌이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외교장관과 ‘외교정책대표’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러면 EU 조약이 다른 국가들의 국내법 우위에 있다기보다는 잘 정리된 판례법 정도가 될 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왜곡되지 않은 경쟁’이라는 문구가 조약에서 빠지기를 바라는 것도 미심쩍다. 그가 “(자국의)‘보호’는 더 이상 금기시 된 언어가 아니다”고 말한 것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 이번 협의에서 이러한 문제가 묵시된 것은 아쉽다.
아울러 이번 조약은 EU 가입에 대해 더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내세운다. 이 경우 터키와 같은 후보국들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제도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EU 조약은 분명 제도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유럽에 변화를 불러왔다. 다만 각국 정상들은 세부 논의를 거쳐 연말까지 완전 타결지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이 기후변화, 대러시아 관계 등 진짜 EU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입력시간 : 2007/06/25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