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심층진단] 총체적 난국 빠진 통상교섭기능

눈앞이익만 집착 조정·타협 '실종'통상교섭 기능이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정부내에 부문별 담당부서가 있고 수많은 전문가가 있지만 정작 조정과 타협, 성과는 없다. 오로지 이해집단의 자기주장과 실패만 있을 뿐이다. 정치권과 정부 부처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은 물론 관련산업계 등도 눈앞의 이해에만 급급한 탓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통상마찰이 생길 때마다 번번이 우왕좌왕하고 있고 외국의 주장에 끌려다니고 있다. 중국과 마늘분쟁에서 나타난 교섭ㆍ조정 능력 결여와 국가적 망신, 정부부처간 불협화음, 농가 타격은 빙산의 일부일 뿐이다. 실종된 통상기능은 국민의 정부 최대의 실패작의 하나로 꼽힌다. 무엇이 우리의 통상시스템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대안은 없는지 알아본다. ◇모두가 자기주장만 한다 축구를 생각해 보자. 베스트 일레븐의 개인기가 엇비슷하면 조직력이 승부를 좌우한다. 개인기가 다소 떨어져도 팀웍이 단단한 팀은 의외의 결과는 낳는다. 한일월드컵에서 세계 4강에 오른 한국대표팀이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그런데 개인기로 떨어지는 팀이 조직력은 커녕 적전분열만 일삼고 있다면 어찌될까. 승부는 기대할 수도 없다. 한국의 통상시스템이 꼭 이 모양이다. 갈수록 꼬이고 있는 마늘협상은 실종된 통상외교와 그 폐해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 무엇보다 손발이 전혀 맞지 않았다. 마늘협상과 관련 집단은 모두 9개. 5개 정부부처와 1개 위원회, 농민단체와 휴대폰ㆍ화섬업계, 정치권 등이다. 이들이 모두 다른 목소리를 냈다. 대외경제정책을 조정하는 재정경제부는 골치 아픈 문제에 개입을 꺼렸으며 농림부와 통상교섭본부는 책임전가 파문에 알 수 있듯이 사사건건 대립했다. 산업자원부와 무역위원회, 정보통신부도 '경제 문제를 경제로 풀지 못한' 책임이 있다. 부처마다 틀린 속내는 협상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고 결국 중국에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근본해결보다는 표심만 의식하는 정치권이 문제 무엇보다 결정적인 책임은 경제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들었던 정치권에 있다. 마늘농가의 표를 의식한 일부 정치권의 압력으로 무역위원회가 대중국 초강수를 두기 시작하면서 일은 꼬일대로 꼬였다. 결과는 모두의 실패였다. 부처간 갈등은 심화하고 중국에 수출을 열심히 한 죄로 중국산 마늘수입 분담금을 부담한 휴대폰업계 등도 예상치 못한 과외비를 지불해야 했다. 마늘농가도 마찬가지다. 산소호흡기를 2년여 연장한게 고작이다. 그나마 내년이면 당장 파산위기를 맞게 된다. 농림부와 당정협의를 거쳐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 가드)를 발동하도록 유도했던 민주당도 실패했다. 표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다퉜지만 모두가 패배한 것이다. 중국은 우리와는 철저하게 대조적이었다. 정부부처와 마늘 생산농가, 공산품 수입업자가 똘똘 뭉쳐 얻을 것을 다 얻어냈다. 중국정부와 마늘 수출업계가 담합해 한국이 사들여야 하는 의무수입 분량의 가격을 크게 조작한 흔적까지 있다. 중국과 마늘 분쟁에서 입은 피해의 상당분은 결국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일반회계에서 처리됐다. ◇ 통상 시스템늬 개혁이 시급 문제는 모두가 손해보는 통상마찰의 실패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용덕 교수(행정학)는 "마늘협상의 파문은 일차적으로 현 정부 출범시 부처간 관료정치에 의해 급조된 통상행정 체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좀 더 궁극적으로는 국정운영시스템이 지닌 한계에서 오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상기능은 물론 국정운영 전반에 걸친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실패의 연속인 현재와 같은 통상 시스템의 난맥상은 적어도 새 정권이 들어설 내년 초까지는 존속될 전망이다. 정원창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성장과 교역 증가, 급속한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자원이 부족해 국부의 축적을 외국과의 무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에서 대외협상능력의 상실은 재앙을 의미한다"며 "대외협상력의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권홍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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