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11·3 부실판정 뒤처리 '부실'

기업평가 잣대 '구멍' 상시퇴출 혼선정부의 부실기업 정리작업에 구멍이 나고 있다. '이벤트'라는 비판을 받아가며 단행했던 11ㆍ3 부실판정의 뒤처리는 미적거리고 당시 '정상'으로 분류됐던 기업이 부도를 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달부터 상시퇴출제가 가동됐지만, 기업 신용위험을 평가하는 잣대는 여전히 미진하고 획일적이다. 분식회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제기돼 회계감사 결과가 과거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은데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에 따라 상시퇴출제를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퇴출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들어 자금시장이 선순환 궤도에 들어서고 있지만 자금공급의 불균형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상시퇴출이 혼선을 빚을 경우 또다시 혼란이 야기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부실한 사후관리 11ㆍ3 부실판정 작업은 몇달동안 금융시장을 소용돌이로 몰고난뒤 이뤄낸 결과였다. 금융시장의 옥석가리기를 통해 시장의 조기안정을 찾자는 취지였다. 회생가능 기업은 주채권은행이 책임지고 지원하되, 정리대상으로 분류된 곳은 조기 처리하는게 원칙. 특히 신속한 정리작업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열쇠로 늦어도 두달이내 끝내야 한다는게 한 외국계 은행 기업금융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러나 11ㆍ3 뒤처리 작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당시 정리대상으로 분류된 52개 기업중 청산ㆍ법정관리ㆍ매각ㆍ합병 등을 이행한 곳은 불과 31개. 이행률로는 59.6%에 불과하다. 특히 매각작업은 20개 대상업체중 맥슨텔레콤ㆍ대우전자부품ㆍ쌍용중공업 등 3개사에 불과하다. 매각작업의 도구로 이용된 CRV(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는 여지껏 설립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부 채권은행들은 CRV에 대해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현대건설 CP(기업어음) 연장을 놓고 하나은행과 새마을금고간 벌였던 분쟁에서 볼 수 있듯, 금융기관의 이기주의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부실한 부실평가 잣대 11ㆍ3부실판정당시은 평가기준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이하 ▦요주의 이하업체 ▦은행 내규에 따라 부실징후기업으로 관리중인 곳 등 3가지. 이에 따라 평가대상으로 올랐던 곳이 총 287개. 자연 287개에 오르지 않은 나머지 기업들은 일정기간은 정상궤도를 밟아가야 옳다. 고려산업개발이 그렇다. 고산은 부실판정 작업 3개월만에 부도를 냈다. 회계법인이 기업에 대해 불과 3개월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장기전망을 내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금감원은 당시 고산이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시적 유동성위기에 처해있는 기업'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기껏 부도가 난 이후 내놓는 해명이 "은행들이 그토록 회수에 나설지는 몰랐다"는 정도다. 평가기준에 헛점이 있었든지, 정부와 채권단이 사후관리를 잘못했든지 문제가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심하게 표현해 직무유기다. 결국 당분간은 잠재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는 기업들 스스로는 물론, 금융시장도 항상 불안에 떨 수밖에 없게 됐다. ◇상시퇴출 평가기준 보완 필요 정부는 최근 11ㆍ3 부실판정기준에 일부를 보완한 상시퇴출기준을 내놓았다. 2금융권 여신비중과다, 연체장기화 우려 기업 등이 새로 포함됐다. 반기별로 신용위험 평가계획이 수립된다. 그러나 이 또한 작위적이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수시로 기업을 퇴출시키는데 일정 잣대를 내놓는 것 자체가 정부의 '전시용 행정'의 산물"이라고 비꼬았다. 기업 신용위험을 1년에 두번 평가하는데, 기업들은 결산때마다 불안에 떨어야 하고 그 중간에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문도 내놓았다. 3월들어 벌써부터 기업 추가 퇴출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분식회계 처리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우사태이후 회계법인들의 감사가 어느 때보다 깐깐해진 반면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퇴출을 면하기 위해 분식회계를 노출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과거의 부실이 한꺼번에 노출되거나 무더기 '의견거절'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다.이에 대한 처리기준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큰 혼란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분식회계에 대해 '청산'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는 반면 '뒷처리'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자금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김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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