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5월 20일] 대통령은 정치서 벗어날 수 없다

나라가 시끄럽다. 연이어 터지는 쇠고기 파동에 일본의 교과서 왜곡까지. 대한민국이 아무리 다이내믹한 사회라고는 하지만 잇달아 터지는 대형 뉴스에 국민들은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몇 달도 안돼 국민들은 벌써 몇 년은 흐른 것 같다는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경제ㆍ사회적 대형 이슈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혼탁한 진흙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밑바닥 여론은 주류 언론을 벗어나 샛길을 찾아다니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쯤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언론인 등을 만났을 때 했다는 얘기가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이제 친박이나 친이는 없다. 나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나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를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국내 정치인들을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충 이런 취지의 발언이었다. 대통령 자신은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뛸 테니 국내 정치는 그대들이 알아서 하라는 말이었다. 얼핏 들으면 스케일이 큰 발상처럼 보이지만 매우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시중에 떠도는 ‘대통령의 국민과 소통 부재’라는 의구심은 바로 이런 발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내의 정치 이슈는 대통령이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정치라는 무대가 모든 사람들이 대의를 위해 뛰는 뭐 그런 것도 아니다. 정치는 말 그대로 각 개인 또는 집단의 욕망이 뒤엉키는 무대이고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 공동선이라는 목적이 어렴풋이나마 형성되는 무대여야 한다. 정치적 이해 관계를 조율하지 못하면 경제도 사회도 모두 헝클어지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 시중에서는 “집권층 실세가 누구에서 누구로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어 정신을 찾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심이 바로 서지 않은 까닭인지 너도나도 보다 많은 권력을 취하려고 움직이는 진흙탕 정국이 전개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치에 초연하다고 주장하는 대통령은 그래서 어색하다. 정치에 초연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범려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세의 재상이자 중국의 추앙받는 장사꾼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범려는 모시던 월왕 구천이 숙적인 오왕 부차에게 패해 포로로 잡혔을 때 주군과 함께 오나라에서 온갖 굴욕을 함께 겪으면서도 항상 섶에 눕고 쓸개를 팔아 먹으면서 복수의 일념을 잊지 않았다. 바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3년의 각고 끝에 마침내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대성공을 거둔 뒤 범려는 오히려 훌쩍 떠나고 만다. 월왕 구천은 ‘불행은 같이 할 수 있으나 행복이나 권력이 함께 나눌 수 없는 인물’이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범려는 재상 자리를 버리고 도(陶)라는 이름의 땅으로 건너가 농사를 짓고 장사에 힘을 쏟아 거대한 부(富)를 이루고 천하에 그 이름을 알렸다. 훗날 사람들은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을 보통 도주공(陶朱公)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도(陶)의 땅에서 주공(朱公)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 범려의 호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범려의 처신은 여러 면에서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장량과 비슷하다. 장량 역시 중국이 통일된 뒤에 훌쩍 세상을 떠나 신선처럼 살려고 했다. 한신 등 당대의 인물들이 모두 사냥개처럼 삶아지거나 목이 떨어지는 불운을 겪었지만 장량은 그런 운명을 피했다. 정치를 하되 결국 정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최고지도자를 돕는 일을 하거나 일시적으로 이익단체를 대변하는 사람들 또는 일반 국민들이지 결코 최고지도자 그 자신은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척 했지 그렇다고 권력을 모두 내놓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치에서 발을 빼려고 하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해진다. 바로 이런 상황에 국민과 정치권의 의사소통이 갈수록 막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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