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왜 장보고 인가

김성훈<상지대 총장, 전 농림부장관>

KBS 드라마 ‘해신(海神)’이 25일이면 종영된다. 일찍 끝난다고 아쉬워할 만큼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도대체 탈이데올로기, 탈국경의 21세기 대명천지하에서 왜들 9세기 미천했던 섬사람 장보고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가. 그가 바로 오늘날 현대사회가 갈구해 마지않는 도량이 넓고 정의감이 투철한 위대한 비전을 갖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장보고 전기를 쓴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라든지 이를 그대로 신당서에 옮겨 실은 편찬자 송기(宋祁)는 “장보고란 인물이 있는데 누가 오랑캐나라(夷國)에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나라에 현인이 한사람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5,000년 한ㆍ중ㆍ일 역사상 세나라의 정사에 한 인물의 전기가 두루 실린 경우는 장보고 대사뿐이다. 얼마나 위대했으면 ‘엔닌(圓仁)의 당나라 여행기(1955)’를 쓴 하버드대학의 에드윈 올드파더 라이샤워 교수는 장보고 대사를 가리켜 ‘해양상업제국의 무역왕(Trade Pri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이라고 명명했을까. 신라시대 대사(大使)라는 직책은 장보고 말고는 전무후무한 것이어서 오늘날 총독의 뜻과 같이 일정지역을 독자적으로 다스렸다. 장보고 대사는 단순히 인간적으로 위대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적 개념으로 다국적 초국경 군(軍)ㆍ산(産)ㆍ상(商) 종합상사를 창설한 최초의 최고경영자(CEO)였다. 또한 정경분리원칙에 입각한 민간 주도의 동아시아 경제 및 물류 중심 개척자였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고구려 백제 유망민들을 신라의 깃발 아래 한데 모아 자칫 저항적일 수밖에 없던 민초들의 에너지를 한ㆍ중ㆍ일과 동서양 해양상업 활동에 창조적으로 결집시킨 인간경영의 천재였다. 자유무역협정(FTA) 또는 동아시아경제공동체(EAEC) 개념으로 통용되는 국가간 상호협력의 모델을 맨 먼저 구현한 선구자였다. 그리하여 완도 청해진에 본거를 두고 중국 내 산둥성으로부터 장쑤성ㆍ저장성ㆍ푸젠성에 이르는 주요 교통 및 상업 요지 20여곳과 일본 규슈 일대에 신라방 또는 신라촌을 건설해 페르시아 등과의 동서양 국제 중계무역과 한ㆍ중ㆍ일 삼각무역을 경영한 탁월한 정치ㆍ외교ㆍ경제ㆍ정보수집 능력을 갖춘 동양에 전무후무한 국제인이었다. 원양선을 건조하고 황해ㆍ중국해ㆍ남해안을 안마당처럼 주름잡았는가 하면 실크로드에 버금가는 세라믹로드(Ceramic Roadㆍ도자기 무역 항로)를 개척하고 완도ㆍ제주ㆍ영파(저장성 명주) 등을 연결하는 남중국 항로를 열었다. 말하자면 조선업과 해운업의 시조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장보고 대사는 오늘날 크게 강조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장 확실히 실천한 공인이었다. 머문 곳마다 절을 짓고 신라와 일본의 불교를 발흥하게 했고 학술ㆍ문화진흥을 위해 당나라 유학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청자와 녹차 재배기술을 국내에 도입, 남해안의 민생경제를 번창시켰다. 특히 청해진을 비롯해 중국 각곳의 신라방 또는 신라촌의 자치행정권을 부여받아 민생들의 안정적인 삶과 자부심을 심어줬다. 스스로 무소유 원칙을 지키며 윤리경영과 사회공헌을 실천했다. 본격적으로 그의 위대한 족적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지난 89년 고 이맹기 제독 등 선주협회의 후원으로 손보기ㆍ김문경 교수들과 필자 등이 ‘장보고 해양경영사 연구회’를 창립해 십수차례의 중국 현지답사와 일본 현지조사, 문화재청의 완도 일대 발굴조사 끝에 그 실체가 알려졌고 세차례의 장보고 연구 국제회의를 통해 공인돼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로 하여금 93년 3월 ‘장보고의 달’을 지정하게 함에 따라 장보고 대사는 사후 1,152년 만에 비로소 복권된 것이다. 하마터면 역사의 뒤안길에 묻힐 뻔했던 장보고 대사의 위대한 업적이 드라마로 다시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오로지 작가(최인호)와 드라마 연출자들의 수월성 덕분이다. 그러나 장보고는 우리에게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가르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동북아경제중심론이 정부 차원에서만 국정지표로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장보고는 정경분리, 민간주도, 산업과 무역의 국제화, 학술ㆍ종교ㆍ문화 창달,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저항적 에너지를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시킨 지도력,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와 민족애, 박애주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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