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중일 바둑 영웅전] 치우쥔의 승부 호흡

제4보(53~65)



흑53은 쌍방 세력의 분수령이 되는 절호점이다. 강동윤이 대세를 리드하고 있다. 치우쥔은 장고에 빠졌다. 그 사이에 사이버오로의 오늘 해설자 박승철은 치우쥔에 대한 이야기를 생중계 사이트에 올렸다. "중국기원에 갔을 때의 일인데요. 기사실에서 치우쥔이 무슨 기보를 혼자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었어요." 도대체 무슨 기보인가 하고 슬쩍 다가가 보니 치우쥔 자신이 엊그제 둔 바둑의 기보였다. 그런데 그 연구하는 태도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실전보다도 더 열심히 한 수, 한수를 재검토하는데 시간을 물쓰듯 하는 것이었다. 그 진지함과 끈질김 앞에 같은 프로기사이면서도 박승철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전에 저우허양의 태도에도 놀랐는데 치우쥔은 그보다 한 수 위더라고요."(박승철) 저우허양이라면 필자도 그 명경지수 같은 고요함과 진지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다. 저우허양은 우리 식으로 읽으면 주학양(周鶴洋)이다. 1976년생으로 6소룡의 하나였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 지독한 치우쥔이 강동윤 앞에서는 도무지 맥을 못 추는 느낌이네요. 강동윤이 그야말로 펄펄 날고 있어요."(박승철) 백54는 치우쥔의 승부 호흡이다. 다소 뒤져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다부지게 지키고 있다. 이 장면에서는 백54가 아니라 참고도1의 백1이 제일감이다. 그러나 그것이면 흑이 2로 받는 바둑이 될 터인데 우상귀는 모조리 흑의 확정지가 될 것이다. 치우쥔은 그것이 싫은 것이다. 실전보의 백54로 우하귀의 백진을 지켜놓고 백56까지도 단단하게 지켜놓고 나서 흑이 57로 큼직하게 키울 때 비로소 백58로 쳐들어가는 이 호흡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고수는 침략을 서두르지 않는다. 상대가 한껏 기분을 내어 입체적으로 지키게 해놓고 비로소 게릴라를 투입한다. 조치훈이나 조훈현이 즐겨 쓰는 이 방식. 치우쥔은 이미 그 경지에 가있다. 백60으로는 63의 자리부터 두는 것이 상식이지만 우상귀의 흑진이 너무도 공고하게 굳어지는 것이 싫어서 치우쥔은 실전보의 60, 62로 슬쩍 비튼 것이다. 백60으로 62부터 두면 흑은 참고도2의 흑2, 4로 강공을 펼칠 염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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