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 '한국형 연봉제' 걸림돌 많다

연봉제는 IMF탈출의 묘약인가.IMF체제 이후 국내 기업에 연봉제가 질적, 양적으로 확대일로에 있다. 「총액임금은 최저, 개인의 능률은 극대화」할 수 있는 「묘약」으로 일컬어질 정도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식이나 일본식을 단순히 흉내를 냈던 도입초기 연봉제와는 달리 한국기업의 풍토에 맞는 「신연봉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연봉제는 실시 7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서구식 연봉제의 문제점을 대폭 개선한 것으로 성과급이 대폭 확대되고 임금 등급간 격차가 커지며 팀 및 조직별 평가가 개인별 평가에 반영되는 등 한국기업의 문화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 이러한 움직임은 IMF를 만난 한국 기업의 임금제도가 연공서열 중심에서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기초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하지만 신연봉제 역시 문제점이 적지않은 실정이다. 아직도 연봉제는 「단기업적을 중시하고 있어 장기적 생산성 향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조직원간 경쟁을 촉발해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는 등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임금삭감이나 정리해고의 간접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 때문에 대한상의 등 기업 관련단체들은 날로 확산되고 있는 기업의 연봉제 정착을 위해 퇴직금 제도 개선 등 여건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도입실태=연봉제는 대기업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73.7%(대한상의 조사), 30대 그룹중 23개 그룹 및 100대 기업중 73개 기업(월간 현대경영)이 연봉제를 도입했거나 준비중이다. 준비중인 기업들도 실시시기를 대부분 「올해」로 잡고 있어 올해는 연봉제의 해가 될 듯. 또 금융기관은 물론 정부투자기관, 나아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까지도 연봉제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이미 중앙부처 3급이상 전원, 정부투자기관에 이어 지방공무원 1~3급에 대해 올 4월부터 연봉제를 실할 계획이다. 이제 연봉제는 일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세」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안희탁(安熙卓)박사는 『늦어도 내년까지는 연봉제가 한국인의 임금제도로 정착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적용 대상도 확대되는 추세다. 도입초기 부장이상의 임원이나 영업·연구개발직 등 일부 직종에 국한됐으나 지난해에는 과장급까지 확대됐으며 올해들어서는 전사원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미원그룹 등이 대표적인 예. 직무별로도 사무직 등 지원부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신연봉제의 특징=국내기업들이 도입해온 연봉제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처럼 매년 재계약하는 순수의미의 연봉제와는 다른 절충형이다. 즉 연봉 하나만으로 구성된 순수한 연봉제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월급제하의 월정급여에 해당하는 부분을 기본연봉으로 하고 여기에 상여금에 해당하는 부분을 업적연봉으로 구성해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고 있는 것. 연월차, 휴가비 등은 별도. 그러나 최근 추세는 이 기본연봉을 축소하는 대신 업적연봉 부분을 대폭 확대, 개인간 임금격차를 더욱 벌여 구성원간 경쟁을 유발하겠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동안의 연봉제는 동료간에 기껏해야 20%정도의 성과급 차이가 나는데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도입하고 있는 연봉제 하에서는 동료간에도 월급이 2배까지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지난해말과 올해들어 연봉제를 새로 도입하고 있는 현대전자와 에버랜드가 대표적 사례. 현대전자의 경우는 1억원대 연봉이 가능한 파격적인 연봉제다. 현대는 기본생활 보장을 위한 기준연봉은 연간 조정폭을 5% 범위로 한정하고 인센티브, 즉 업적연봉은 성과에 따라 연구개발직은 기준연봉의 최고 2배, 비연구개발직은 1배를 추가로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에버랜드의 연봉제는 격차가 더욱 크다. 에버랜드는 성과지향 인사관리를 위해 기존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에서 완전히 탈피, 전 사원 연봉제를 도입하고 연봉 차등폭을 기존의 45%에서 60%로 늘리기로 했다. 또 인센티브를 확대,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별도의 인센티브를 지급키로 했다. 팀 및 조직별 평가를 중시하는 것도 신연봉제의 특징중 하나. 개인별 평가만 할 경우 경쟁을 유발할 수는 있으나 팀웍을 해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따라 최근 도입되고 있는 연봉제는 개인별 평가에 앞서 팀별 또는 조직별 평가를 실시, 이를 기초로 연봉을 산정하고 있다. 지난해 연봉제를 도입한 ㈜대우, ㈜새한과 삼성그룹 일부 계열사가 대표적인 예. 대우의 경우 팀이 수출목표를 초과달성하면 전원에게 승진혜택과 최고의 인사고과를 주지만 달성이 안됐을 때는 개인별 평가도 높은 등급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새한의 경우는 사내 조직별 평가에서 전체가 B등급 이상을 받아야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제로 섬(ZERO SUM)방식이 많다는 점도 새로운 추세다. 도입 초기 연봉제는 사원들의 업무성과를 높이기 위해 잘하는 사원에게 성과급을 더 주어 임금총액이 연봉제 실시전보다 많아지는 플러스 섬(PLUS SUM) 방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도입되고 있는 연봉제는 제로 섬이 주류를 이뤘고 일부에서는 마이너스 섬도 있었다. 연봉제에 대해 근로자들이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제점=도입 초기다 보니 자연 문제점도 적지않다. 무엇보다도 IMF체제라는 특수 상황과 맞물려 정리해고를 위한 정지작업 또는 임금삭감을 위해 연봉제가 도입되고 있다는 거부감이 크다. 능력주의 강화라는 명분만 내세울뿐 업종별, 직위별 공정한 능력평가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임금삭감용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지난해 IMF체제를 맞아 상여금 반환 등 임금삭감을 감수한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제로섬 방식의 연봉제가 도입되는 바람에 사실상 마이너스 섬이 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연봉제라는 명분하에 연공서열 등을 무시, 젊은 팀장밑에 종전 상위직급자들을 배치해 무언(無言)의 퇴사압력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팀 또는 조직의 분위기를 저하시키는 문제점도 낳고 있다. 지나친 능력주의가 동료들간 팀웍과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것. 또 이듬해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일부 영업소 등에서는 올해 실적을 일부러 올리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실적이 연말에 집중되는 것도 연봉제 실시후 생겨난 새로운 현상이다. 이에 따라 인사담당자들은 『연봉제가 새로운 한국형 임금제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성과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마련되어야 하며 연봉제를 실시하기 전에 종업원과 회사간에 충분한 이해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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