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2.7%→수출증가율 한자릿수→선행지수 하락반전→경상수지 적자.’ 경기 신호가 ‘경고등’에서 ‘적색등’으로 바뀌었다. 불과 5월 중순까지도 “5% 성장 목표를 바꿀 이유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해왔던 정부는 급기야 “이대로 갈 경우 5%가 안될 것”이라며 ‘5% 포기’를 사실상 선언했다. 장기불황 가능성까지 있다는 엄포성 발언도 꺼냈다. 보기에 따라서는 낙관론에 휩싸여 있던 정부가 현실론으로 돌아서다 못해 위기의식을 조장하려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추가경정예산 등 경기부양책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해 뒤늦게 실제 경기상황을 고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경기지표 뚝뚝, 2분기 GDP도 3%(?)=30일 나온 지표들은 경기가 저점에서 회복되기는커녕 하강세로 돌아서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표 대부분이 ‘우울모드’다. 우선 ‘4월 중 산업활동동향’에서는 경기선행지수마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연초 반짝경기에 취해 있던 경제주체들이 금세 비관 색채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현 경기를 표시하는 동행지수는 9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 4월 수출증가율이 한자릿수(6.9%)로 떨어진 것이 직격탄으로 다가왔다. 수출이 꺾이다 보니 경상수지(한은 추계)도 2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수출은 ‘번지점프’ 중인데 내수회복은 게걸음이다. 도소매판매는 1년 전보다 1.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전월비로는 0.4% 떨어졌다. 설비투자추계 증가율은 3월 1.4% 증가에서 4월에 다시 -0.3%로 돌아섰다. 제조업 가동률도 78.9%로 한달 만에 80% 아래로 내려갔다. 당장 2ㆍ4분기 GDP가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ㆍ4분기도 1ㆍ4분기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훈 SK증권 이코노미스트는 “5~6월에도 산업생산은 4% 이하 수준이 유지될 전망이며 2ㆍ4분기 성장률도 3%를 밑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왜 안 풀리나=효력 없이 말로만 하는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4월 말 현재 재정집행이 66조4,000억원에 이르러 상반기 계획의 66.3%에 달했지만 효과를 발견할 수 없다. SOC사업은 돈만 풀었을 뿐 공사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국책사업은 정치논리에 휘둘리면서 표류하고 ‘한국형 뉴딜’이라던 종합투자계획은 ‘스몰딜’이라는 말도 무색하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정책들이 오락가락하고 핵심 정책들을 놓고 부처들이 따로 놀고 있으니 제대로 될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자연스럽게 민간기업들의 투자는 동면 상태다.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이 미뤄지면서 LG필립스LCD 등 수조원의 민간투자가 공중에 떠버렸다. 부동산세제는 경제ㆍ정치논리가 뒤범벅되면서 소비의욕을 퇴색시키는 핵심 도구로 전락했다.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말은 아주 평이한 단어가 돼버렸다. ◇경기부양 위한 명분 축적 시작=정부는 27일 당정협의에서 이례적으로 현 경기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BTL사업이나 벤처ㆍ자영업대책들을 쏟아내봤자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때문에 정부는 핵심 부양책인 추경에 목을 메고 있지만 당은 미온적이다. 재경부 핵심 당국자는 “생각이야 10조원이라도 하고 싶지만 지난해 온 힘을 써봤자 1조8,000억원의 추경을 얻어내는 데 그쳤다”며 당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부총리의 발언은 결국 “정부로서는 의미 없는 낙관론 대신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부양책을 조기에 얻어내겠다는 심산”(민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