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대한상의회장
"집단소송제와 집중투표제 도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기업을 큰 혼란에 빠지게 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외국에서도 용도폐기된 것이라는 점을 정부가 깊이 인식했으면 합니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상의가 이들 제도에 찬성하는 것처럼 알려진 것은 오해라며 집단소송제는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시행돼야 하고 집중투표제는 도입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제규범에 맞지 않는 경영은 시장에서 용납되지 않는 만큼 기업들도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해 보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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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최대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우리경제가 언제쯤이나 좋아질까' 인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경영현장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미국 등 전세계가 좋지 않는데 우리만 좋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올해 4%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외국에 비하면 높은 것인 만큼 각 경제주체가 비관보다는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결과를 보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제 개인적으로도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다만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고 있는 게 걱정이지만 정부정책만 뒷받침되면 연말부터 회복세를 느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부는 노사안정과 기업규제완화에 역점을 두고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하며 기업은 전략부문에 집중, 경쟁력 강화에 노력해야 합니다.
-지나친 규제가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었고 정부도 이를 일부 인정, 최근 완화조치를 취했습니다. 정부 조치를 어떻게 생각하며, 미흡한 게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정부가 재계 건의사항 72건 중 34건을 수용하고 8건을 중장기 검토과제로 분류하는 등 상당폭 수용했습니다.
특히 구조조정용 출자의 예외인정 시한을 2년 연장한 것이나 수출ㆍ투자활성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는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앞으로도 공정거래ㆍ입지규제ㆍ환경정책 등 기업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규제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완화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규제도입도 기업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기업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검토돼야 합니다.
-정부는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집단소송제ㆍ집중투표제를 반드시 시행한다는 입장입니다. 대한상의는 전경련과 달리 정부방침에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오해입니다. 집단소송제는 소송남발 등 역작용이 우려되지만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의 허위공시ㆍ주가조작ㆍ분식회계 등의 행위에만 우선 시행하는 정도라면 기업투명성 확보를 위해 감내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소송대상 기업과 범위 확대 등 당초보다 훨씬 강화된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습니다.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는 법무장관을 면담해 "외국에서 용도폐기된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설명했습니다.
이를 시행하는 나라는 러시아ㆍ멕시코ㆍ칠레 등 3개국에 불과합니다. 이 제도는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의 경우 51% 지분을 갖고도 이사회 과반수 확보가 불가능하게 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전경련과 IT 육성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는데요.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유통정보센터에서 최근 전자카탈로그 10만개 개통식을 가졌는데 전경련이 그 전날 비슷한 사업계획을 발표해 불만을 나타낸 적이 있지요.
정보기술(IT)과 관련된 중복투자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전경련이 뒤늦게 왜 끼어드는지 모르겠어요.
-노조의 파업사태가 거의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 문제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픕니다. 근본적인 대책은 노사간 신뢰에 기반한 협력적 관계 구축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근로자의 복지와 회사발전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법테두리 내에 이뤄지는 합리적 노동운동이 필요합니다.
정부도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대처, 노사간 대화를 통한 협상이 촉진되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도 이면합의 등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동을 자제해야 하며 종업원과 더불어 발전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경제회생의 디딤돌이 될 기업구조조정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꼭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주도의 사회안전망 구축이 중요합니다.
-IMF 이후 구조조정이 꾸준히 이뤄져왔지만 아직 미흡하다는 게 국내외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의 지적입니다. 기업입장에서 평가한다면 몇 점쯤이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나'를 제외한 구조조정에 모두 찬성하지만 내가 포함되면 모두 반대하죠. 우리의 후진적 경제구조가 상당부분 개선된 것은 자긍심을 가질만하다고 봅니다.
지난 98년 303%이던 제조업 부채비율이 올 1ㆍ4분기에 208.9%로 낮아져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됐고 금융회사 대형화도 성과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런 수치적 성과보다는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 더 큰 수확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정부주도보다는 기업의 필요성에 의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해나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경쟁력강화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지금은 새로운 정책개발보다 기존정책을 잘 시행하는 것이 경제활력을 촉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상의가 주최한 2차 세계상공회의소 총회에 87개국 1,100여명의 경제인들이 참석했습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경제에 대해 충고도 많이 했을텐데요.
▲그들도 그들이지만 우리경제의 채점관은 서울과 홍콩에 나와 있는 20~30대 젊은 외국인 펀드매니저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아무리 한국경제와 기업이 저평가됐다고 말해봤자 저들이 사지않으면 도리가 없지요. 아직도 우리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각 경제주체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두산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는 의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소비재 위주의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사업계획을 말씀해주시죠.
▲맥킨지컨설팅 용역결과 두산처럼 100년된 회사는 소비재가 아니라 중간산업재를 해야 한다고 해서 한중을 인수하게 됐습니다.
한중을 인수한 뒤 철구조물ㆍ시멘트플랜트 사업부문 등 경쟁력이 없는 부분은 과감이 떼어냈습니다. 앞으로 중공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가속화하되 소비재도 캐시카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유지할 계획입니다.
대담=이현우 산업부장
정리=고광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