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성남 국가기록원을 찾은 지난 16일 청사 주변에 심상찮은 외관의 한 차량이 취재진의 눈길을 끌었다.
청록색 대형 차량이 저속(시속 30㎞ 이하)으로 운행되다 보니 한눈에 봐도 특수차량임을 알 수 있었다. 국내에 단 1대뿐인 이 차량은 디지털자료 분석용 특수차량. 내부에 서버나 파일 등을 복사(이미징) 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현장에서 직접 자료를 분석하는 이동식 수사실이다.
특수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대검찰청 디지털법의학(포렌직)센터. 이 곳은 검찰 수사에 다양한 디지털 기법이 동원되면서 위상이 급증하고 있는 첨단 수사기관으로 그 동안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았다. 디지털 포렌직이란 디지털화된 범죄 증거를 첨단과학 수사를 통해 찾아내고 분석하는 전 과정을 뜻한다.
포렌직센터는 정보기술(IT) 환경의 급속한 발전으로 디지털 증거를 없애려는 시도가 급증하자 증거인멸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지난 2008년 대검에 건립됐다.
이후 과학수사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검찰 수사에도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2011년부터 올해 2월까지 진행된 저축은행 비리 수사에서는 서버 탐지 도구를 이용해 숨겨진 서버를 찾아냈다. 서버에 들어 있는 자료는 검찰이 비리에 연루된 저축은행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폭행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을 뻔 했던 남성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도 진가를 발휘했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여성 A씨의 휴대폰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A씨가 고소당한 남성과 고소 이후에도 관계를 유지해온 정황이 담긴 문자메시지와 사진 등을 찾아낸 것이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검찰은 A씨를 추궁했고, A씨로부터 남편에게 간통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성폭행 당했다고 허위 고소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센터는 과학수사담당관실과 디지털수사담당관실, 디엔에이수사담당관실에 이어 최근 포렌직연구소를 개소하면서 3실1연구소 체제로 확대됐다.
수장은 과학수사에 잔뼈가 굵은 김영대 차장 검사로 검사 4명을 비롯해 수사관, 분석관 등 총 137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팀별 주요업무를 살펴보면 디스크 분석팀은 서버, 노트북, 외장하드 등 디지털저장매체에 대한 압수수색과 복구분석을 실시해 디지털 증거를 수집ㆍ분석한다. DB분석팀은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서 조직의 업무 시스템에 활용되고 있는 각종 데이터베이스를 수색하고 분석하는 일을 담당한다.
모바일 분석팀은 휴대폰 등 이동형 디지털 기기에 대한 분석을, 통화ㆍ계좌 분석팀은 전화통화 와 금융거래 계좌내역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한 뒤 유의미한 정보를 도출해 내는 작업을 맡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IT산업의 발전과 함께 디지털법의학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만큼 포렌직센터의 역할과 위상도 함께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