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예술 발전 막는 '한국적 관행'

"미술관·갤러리 전시 병행 안돼"<br>국내 문화재단측 제동 걸자 세계적 사진작가 개인전 취소

#1.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는 최근 국내의 한 문화재단과 함께 기획해 내년 초에 개최할 예정이던 자신의 미술관 개인전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풍경 사진으로 유명한 케나는 영국의 공장지대 발전소 모습을 서정적으로 포착한 흑백 사진으로 유명하고 가수 엘튼 존에 사진 수집의 계기를 마련해 준 작가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그의 사진 한 장이 개발로 인해 사라질 뻔했던 삼척 월천리 솔섬을 구해내면서 이름을 각인시켰다. 갈등은 케나 측이 미술관 전시 이후 국내 갤러리에서도 전시할 계획이라는 뜻을 전하자 국내 문화재단이 이를 반대하면서 불거졌다. 작가 측은 "비영리기관인 미술관 전시를 추진하면서 작품을 거래하는 갤러리를 통해 재정기반을 마련하는 게 통상적"이라고 밝혔으나 문화재단 측은 "미술관 전시와 갤러리 전시를 병행할 수 없다"는 '한국적 관행'을 주장해 양측은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2. 지난달 부산의 한 사립미술관은 사진작가 L씨의 개인전 개막을 하루 앞두고 전격 취소를 통보했다. 미술관 측은 "작가의 또다른 작품 전시가 인접한 상업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취소 이유를 밝혔다. 작가 측은 "갤러리 전시는 후배들의 데뷔를 돕기 위해 3개월 이상 먼저 기획된 단체전이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미술관(뮤지엄)은 영리 추구를 배제한 채 작품을 전시ㆍ연구하는 곳이고 갤러리ㆍ화랑은 상업적 거래가 주요 목적이라는 점에서 설립 목적이나 운영 방향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작가 육성을 통해 예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공통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 외국의 경우 미술관과 화랑이 유사한 기간에 같은 작가의 전시를 함께 여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해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에는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방문에 맞춰 왕립학교미술관과 리슨갤러리에서 아니쉬 카푸어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 역시 월러스 컬렉션과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비슷한 시기에 열렸다.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원로화가 박서보의 회고전이 현재 부산시립미술관과 국제갤러리, 조현화랑에서 함께 열리고 있다. 최근들어 몇몇 작가들이 동시 전시를 추진하다 미술관-갤러리-작가 사이에 마찰을 빚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우리 전시 문화의 낙후된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유럽에서 활동중인 아트컨설턴트 최선희씨는 "영국의 경우 상업화랑들이 무명작가를 발굴해 세계적인 인물로 성장시켜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로 키우고 전시 수준을 높여주자 영국 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실력파 작가를 위해 갤러리가 밀고 뮤지엄이 끌어주는 것이 바람직한 관계로 존중받는다"라고 말했다. 정준모 국민대초빙교수(박물관ㆍ미술관학)는"갤러리가 미술관 전시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작품가치 판정의 '대법원'격인 미술관이 상업화랑의 역할에 간섭하는 것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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