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부서 적극 나설때” 한목소리/“금융대란”… 각계 반응

증시가 붕락 사태를 보인 다음날인 17일 내내 금융계 재계 정부 등 관계자들은 잇딴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날을 보냈다.금융계와 증권계는 이번 증시폭락 양상이 단순한 신용위기 정도가 아닌 「금융공황」의 조짐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정부의 시장 안정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재계는 이같은 증시붕락 사태가 무엇보다 기아를 비롯한 대기업 연쇄부도에 대해 정부가 안일한 판단과 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하며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는 기아사태의 해결없이는 경제 전체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주무당국인 재정경제원과 청와대는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조치는 다 강구하겠다』면서도 『단순히 단기부양 차원의 대응은 않겠다』는 원론 수준의 반응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날 상오 김영삼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증시안정을 위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토록 내각에 촉구한 내용이 향후 당국의 신속한 대응책 모색에 채찍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낳게하는 정도다. 증시 붕락에 대응하는 각계의 움직임과 반응을 정리한다.<편집자주> ◎재경원­“증시부양 즉효대책 없어 고심”/금융권­“기아사태 결말나야 신뢰 회복”/재계­단순한 산업구조조정 아닌 환율·금리·주가 “총체적 위기”/증권계­무기명 채권발행 등 허용 지하자금 양성화가 급선무 ▷청와대◁ 청와대 관계자들은 증시 침체와 관련,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증시 안정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촉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 증시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표정. 그러나 이날 김인호 경제수석의 수석회의 보고내용이나 수석회의후 기자회견 내용이 각각 원칙론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어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 ▷재경원◁ 재경원은 증시부양책을 검토하면서도 국면을 전환시킬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 우선 증시폭락의 원인이 대기업의 연쇄부도, 정치권의 폭로전 등에 따른 파장이어서 단순히 부양책 차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경식 부총리가 누차 강조한대로 증시에 돈을 퍼붓는 식의 인위적인 부양책을 배제하고 배당확대, 수요기반확충 등 증시기반확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장기투자자에 대한 배당소득비과세 등의 정책이 당장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13일 발표한 외국인주식투자한도 확대와 일본자금에 대한 주식양도차익비과세가 실행될 경우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증시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면서 외국인투자가의 불안심리해소를 위해 경상수지적자가 축소되고 경기가 회복국면을 보이고 있는 우리 경제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는게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경원은 질질끄는 기아사태가 증시폭락의 주요인이라는 증권계의 지적에 대해서는 「채권금융단과 기아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강부총리의 정책기조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금융권◁ 최근 금융상황에 대해 금융관계자들은 신용공황 위기가 아니라 이미 신용공황에 진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 특히 신용공황의 주된 요인이 기아사태로 인한 「신뢰 실종」이라고 지적하면서 기아사태를 어떤 방식으로든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 모 종금사 자금부장은 『기아사태가 화의든 법정관리든 결말이 지어져야만 금융기관들도 방향을 잡고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한은 당국자도 『불안심리를 해소하는게 급선무』라며 『최근 주가하락이 총체적 위기상황의 신호탄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라고 우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국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보다도 정부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는게 문제라는게 외국인들의 지적』이라며 정부가 분명한 정책방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 한편 리스와 할부금융, 파이낸스 등 3금융권의 중소금융기관은 최근 금융시장 상황에 대해 아예 체념한 상태. 모 파이낸스사 사장은 지금의 상황을 「금융공황」이라고 단정짓고 『이젠 평소 친분이 있던 중소기업들이 돈빌리러 오면 도망가기 바쁘다』고 토로. 은행계열 파이낸스사의 여신팀장도 『3금융권에서는 주가가 6백선 아래로 내려오기 훨씬 이전부터 금융대란이 시작됐다』며 금융기관인 자신들도 언제 부도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지 모르겠다며 한숨. ▷재계◁ 재계는 중견그룹의 잇따른 부도와 주가붕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최근의 금융위기는 기아사태와 이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그 진원지라고 보고 있다. 수많은 협력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기아의 좌초는 제2금융권의 자금난을 몰고 왔고 이는 다시 단자사의 자금을 쓰고 있는 다른 업체로 영향이 파급되면서 자금력이 취약한 기업들의 줄도산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처럼 국민경제에 깊은 주름을 가져오고 있는 기아사태를 단순한 구조조정과정으로 보고 있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는 금융권의 분위기를 위축시키면서 자금난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상황은 단순한 산업 구조조정과정이 아니라 환율, 금리, 주식 등 기업경영의 3대축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총체적 경제위기 상황」』이라고 우려를 금치 못했다. 재계는 기아사태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처리방침이 정해지지 않는 한 연말 대선까지 이같은 상황은 계속돼 제2, 제3의 쌍방울·태일정밀 같은 중견그룹·기업의 부도행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계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는 기아사태의 해결이 없으면 우리경제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라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함께 심각한 기업 자금난을 덜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제2금융권에 대한 한은특융 등과 같은 비상조치를 통해 추가적인 중·대기업의 부도행진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증권계◁ 증권, 투신사 등 증권업계는 최근 증시폭락상황이 단순히 기관투자가들의 매도자제 결의 정도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라며 무기명 채권발행 등 실명제 완화를 전제로 한 정부의 특단의 대책을 촉구했다. 특히 기아사태가 최근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라는 인식아래 이의 조속한 해결을 정부에 강력히 건의키로 했다. 17일 상오 조찬모임으로 여의도 63빌딩과 맨하턴호텔에서 각각 열린 증권사 사장단 및 투신사 사장단 모임에서 사장들은 자금시장 및 증시안정을 위해서는 무기명 채권발행 허용 및 주식 장기보유자에 대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실명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고위관계자는 『자금시장과 증시안정책의 핵심은 실명제 실시로 지하자금화한 거액자금을 제도권시장으로 끌어내 활용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 사장단 회의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지원을 위한 무기명 장기저리채권 발행 ▲주식 장기보유시 배당소득세 분리과세를, 투신사 사장단회의에서는 ▲자금출처조사 면제 또는 상속세가 감면되는 주식형 증시안정 투신상품 허용 등 실명제 완화를 전제로 한 부양책을 건의키로 했다. 고려증권 이년우 사장은 『증권사 매도자제는 사실상 지난 89년부터 지속된 것으로 선언적인 의미밖에 없다』며 『정부에서 대규모 증시안정 기금을 조성하는 등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정경·산업·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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