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0일] 美-멕시코 조약

한반도 넓이보다 6배나 큰 땅덩이가 굴러왔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ㆍ유타ㆍ애리조나뿐 아니라 뉴멕시코ㆍ와이오밍ㆍ콜로라도의 일부까지 미국 영토로 편입됐다. 제 나라 땅이 커진다는 데 반대하는 의원이 있을 리 만무. 1848년 3월10일, 미국 상원은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승인한다. 조약의 골자는 영토 할양. 멕시코는 136만㎢의 땅을 미국에 넘겼다. 대가는 1,500만달러. 1846년부터 2년간 펼쳐진 미국과 전쟁에서 패한 멕시코는 헐값에 광대한 국토를 내줬다. 리오그란데강을 경계로 하는 미국과 멕시코간 국경도 이때 그어졌다. 전쟁은 텍사스에서 비롯됐다. 멕시코 영토였으나 미국계 주민들의 반란으로 독립공화국으로 9년을 지낸 후 1845년 미국의 28번째 주로 편입된 텍사스와 멕시코간 경계선이 문제였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앨러모 전투를 통해 텍사스를 빼앗은 미국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리오그란데강 근처에서는 소규모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를 얻으려는 미국의 욕심은 결국 대멕시코 선전포고로 이어졌다. 결과는 뻔한 것. 멕시코는 신흥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멕시코 정부에서 토지를 공여받았던 미국계 주민들도 반란을 일으켜 미군을 도왔다. 대멕시코 전쟁의 승리는 미국의 정치ㆍ외교ㆍ경제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협상보다는 무력에 의존한다는 호전적 기질이 싹트고 중남미를 안방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승자에게는 행운도 따랐다. 캘리포니아가 쏟아낸 금만 1848년부터 10년간 5억5,000만달러. 서부를 향한 포장마차 대열이 꼬리를 물며 서부 대개발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미국의 번영 뒤에는 얻어터지고 빼앗긴 멕시코의 회한이 서려 있다. /권홍우ㆍ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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