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시장이 '추가분담금' 공포에 휩싸였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초기 단계의 사업들이 잇따라 조합 설립조차 못해보고 무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착공을 가시화하면서 성사 직전에 이른 주요 지역의 사업마저 예상을 뛰어넘은 과도한 추가분담금으로 수익성이 급락하며 휘청거리는 분위기다.
특히 도심권의 재개발 구역은 물론 송파구 가락동 시영, 강남구 개포동 주공2·3단지 등 강남권 요지의 대규모 재건축 단지들마저 당초 예상보다 많게는 1억원이 넘는 조합원 추가분담금이 나오면서 가격 급락과 이에 따른 조합원 갈등을 낳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개포주공 같은 강남권 요지의 재건축 단지가 추가분담금 증가로 가격 조정이 된다는 건 굉장히 드문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남권마저 휘청거리게 만드는 추가분담금 폭탄=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추가분담금 문제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예고돼왔다. 서울 시범뉴타운으로 관심을 모았던 왕십리2구역은 지난해 말 열린 관리처분계획 총회 결과 초기 예상보다 조합원 1인당 평균 1억3,000만원을 더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초기 110%로 예상됐던 비례율이 지난해 12월 총회에서는 70.35%까지 떨어진 탓이다. 비례율은 사업에서 발생하는 순이익(분양수입-사업비용)을 기존 토지와 건물 등에 대한 감정평가액으로 나눈 값이다. 이 수치가 100을 넘을 경우 조합원은 사업 후 오히려 수익을 얻게 되지만 반대로 100을 밑돌면 아파트 분양을 위해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 왕십리2구역의 경우 당초 지분 가치의 10% 정도 돈을 돌려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30%의 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을 빚게 된 것이다.
서대문 북아현1-3구역도 비슷한 상황이다. 2010년 당시 100.05%였던 비례율이 지난 1월 관리처분변경안에서는 81.18%까지 하락했다. 이 때문에 1-3구역 조합원들은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5억원의 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최근에는 강남권 요지의 재건축 단지도 추가분담금 공포에 휘청거리고 있다. 3월 초 가락동 시영아파트 재건축 조합 측이 분양신청을 앞두고 공개한 예상 추가분담은 이 단지 시세 급락으로 이어졌다. 당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시영 2차 51㎡(이하 전용면적)를 보유한 조합원이 84㎡를 배정 받을 때 내는 추가분담금이 당초 예상했던 4,000만~5,000만원의 3배에 달하는 1억3,000만원대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강남권 최고의 알짜 재건축으로 꼽히는 개포지구 내 주공2·3단지도 분양신청을 앞두고 예상 추가분담금을 공개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두 단지의 조합원 추가분담금은 2011년에 조합에서 제시했던 금액보다 적게는 3,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이나 늘었다.
◇시장 침체에 조합원 부담 눈덩이=최근 강남권 재건축의 추가분담금 증가는 지난 연말과 연초에 재개발 단지에서 발생한 추가분담금 증가와는 다소 다르다는 설명이다. 과거 정비사업장에서 추가분담금이 증액되는 것은 개별 단지의 악재들이 반영된 결과였다. 설계변경을 통해 공사비가 증액(북아현1-3구역)되거나 소송이나 이주 지연으로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금융비용이 증가(고덕시영)해 조합원 분담금이 는 경우가 많았다. 왕십리2구역처럼 아파트 및 상가 미분양 비용을 충당하다 보니 분담금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와 달리 최근에는 부동산 경기 장기 침체가 일반분양가를 끌어내리면서 추가분담금이 증가되는 모습이다. 고덕시영의 경우 사업 지연 못지않게 일반분양가를 당초 계획보다 크게 낮추면서 추가분담금 폭탄을 맞은 사례다. 2011년 당시에만 해도 일반분양가를 3.3㎡당 평균 2,440만원으로 계획했지만 지난 4월 분양 개시 때 책정된 분양가는 1,950만원으로 낮아져 그만큼 조합원 부담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가락시영의 추가분담금 논란의 배경에도 일반분양가 하향 조정이 있다. 2009년 조합은 일반분양가를 3.3㎡당 평균 3,200만원대로 예측했다. 하지만 최근 나온 조합의 자료에는 일반분양가가 최대 2,800만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아파트 시공사들은 이보다도 400만원 가까이 낮은 3.3㎡당 2,430만원의 일반분양가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추가분담금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태다.
개포주공2단지도 경기침체의 영향을 반영해 일반분양가의 차이를 조정했다. 통상 조합원분양가는 일반분양가의 10% 선에서 결정되는데 이번 안에서는 5%로 줄인 것. 따라서 일반분양가가 10억원인 아파트를 조합원은 9억원에 분양 받지만 이 단지에서는 9억5,000만원을 지불해야 해 조합원의 부담이 늘게 생겼다.
◇장밋빛 전망 버리고 현실 직시해야=애당초 추진위나 조합이 사업성을 너무 낙관적으로 판단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추진위 당시 조합설립 동의율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수익성을 높게 제시했던 것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함 센터장은 "경기불황으로 일반분양가를 높이기 어려워진데다 건설사들의 과열경쟁도 사라져 공사비를 크게 낮추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재개발·재건축의 사업성을 따질 때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정 정도의 추가분담금은 조합원들이 감당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신의 돈을 얼마 안 들이고 넓은 새 집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은 현재의 부동산 시장 상황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재건축 사업이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