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가 21일 밝힌 농지법 개정안은 ‘영농의 규모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농지 임대차에 관한 규제를 대거 풀어 농지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도시민들이 실제로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일단 구입, 농지 가격이 상승한 후에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는 등 투기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박석두 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5년 동안 농사를 전혀 짓지 않으면서 임대를 내준 후에 마음대로 매각할 수 있도록 풀어주면 투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지에 대한 전면 임대 허용=현행법에 따르면 지난 96년 이후에 농지를 구입한 사람은 바로 농사를 지어야만 농지를 구입할 수 있다. 질병 등 특정한 사유 외에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지를 바로 매각해야 한다. 즉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현행법은 농사를 짓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농사를 일정 기간 지을 수 없는 농민이나 도시민 가운데 향후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들이 미리 농지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너무 엄격한 법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농림부는 이를 대폭 완화, 내년 7월부터는 농지의 임대를 전면 허용해줄 방침이다. 농민이든, 도시민이든 관계없이 전농지에 대해 농사를 짓겠다는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제출, 농업기반공사의 승인을 받으면 최대 5년까지 임대가 가능하도록 했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해당농지가 전업농이 원하지 않을 정도로 비우량 농지라면 농지은행이 위탁을 거부할 경우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농지투기 우려 높아=농림부는 중장기적으로 농지를 대폭 줄이는 한편 소작농이 시장의 원리에 의해 흡수되는 등 ‘영농의 규모화’를 도모하고 있다. 도시민들의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 자연스럽게 이 같은 과정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칫 농지를 ‘부동산 투기의 현장’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초에 농지법을 개정해 비농업인의 주말ㆍ체험농장용 농지 취득을 허용, 한해 동안 여의도 면적(850㏊)의 5배에 육박하는 4,100㏊의 농지가 도시민에게 팔린 것은 좋은 예다. 더욱이 매년 1만㏊가 넘는 농지가 다른 시설로 전용돼 투기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삼성전자의 기업도시로 관심을 끈 충남 아산시 탕정면 일대 논은 평당 100만원을 넘을 정도다.
따라서 임대차는 허용하되 투기를 방지할 수 있는 규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박사는 “농촌진흥지역은 전용 가능성이 적고 지가상승이 낮은 등 투기 우려가 적기 때문에 이곳부터 단계적으로 임대를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농림부안대로 아무런 규제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모든 농지를 풀어주면 시세차익을 노린 사람들이 가세할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순수한 투자목적으로 농지를 보유하는 사람에게는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 이에 대해 농림부는 세금으로 투기규제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간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농업인에 대해서는 8년 이상 농지를 보유하면 양도소득세를 면제하고 종합토지세를 부과하는 혜택이 있지만 임대차하는 사람에게는 종합토지세와 양도소득세를 그대로 부과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