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목요일 아침에] 때늦은 디스플레이 상생작전

반도체ㆍ휴대전화ㆍ자동차가 비록 국내 3대 수출 품목이라고 해도 결코 우리나라가 세계 1위라고 할 수는 없다. 반면 디스플레이는 분명 세계 1위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난해 세계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액정표시장치(LCD) 36.3%,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52.7%,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39.9%로 대부분의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스플레이시장에서 세계 최강국인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들끼리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삼성전자ㆍLG필립스LCDㆍ삼성SDIㆍLG전자 등 디스플레이 패널 4사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를 결성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디스플레이 연합군이 탄생한 셈이다. 기판 표준화로 日 공세 대응 일본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사실 우리 디스플레이산업은 한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 LCD의 경우 지난 98년 이후 국내 기업들이 차세대 라인을 주도했고 PDP도 2004년부터 삼성SDI와 LG전자 등이 앞뒤를 다투며 세계시장을 석권했으며 지난해에는 드디어 TV 완제품에서도 삼성전자가 매출액 기준 세계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제 세계 LCD시장에서 대만은 점유율 36.2%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일본은 높은 부가가치의 부품ㆍ소재를 무기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90년대 초 일본이 버블 붕괴로 투자가 위축되자 우리 업체들이 선두에 나섰고 97년 금융위기를 맞아 우리 경제가 정체되자 대만 업체들이 추격에 나서던 형세가 또다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해외 업체와는 제휴를 하면서도 서로는 치열한 경쟁만 일삼던 국내 기업들이 갑자기 손을 잡은 이유는 두말할 필요 없이 상생 협력을 하기 위해서다. 사실 패널 크기 표준화만 놓고 보더라도 국내 기업끼리의 지나친 경쟁은 차별화 전략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으나 고비용 생산구조를 낳고 투자 리스크도 증가시키는 부정적 요인으로 더 작용한다. 특히 우리 기업끼리 기판 크기를 달리해 경쟁하면 후발주자인 대만 패널 업체만 검증이 끝난 뒤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가격경쟁력을 누리게 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도시바ㆍ미쓰시타 같은 일본 기업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만 패널 구매량을 늘리는 등 우리 기업들을 전방위로 압박해들어오는가 하면 심지어 일본ㆍ대만 업체가 특허를 공유하는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한국 디스플레이 연합군의 결성은 오는 2010년쯤에는 그나마 사라질 중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까지 포함해 추격자들을 막기 위한 막바지 안간힘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지난해만 해도 40% 가까이 하락한 평면TV는 수년 내에 일반TV와 거의 같은 가격으로 떨어져 좀처럼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디스플레이 연합군의 결성은 도리어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한국 디스플레이 연합군이 하루속히 기판의 표준화를 비롯해 대기업간 패널의 상호구매, 전략적 차원의 특허 공유 등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또한 패널 업체와 소재ㆍ장비 업체 사이에 기술 및 경영전략의 신속한 공유라는 이점이 사라진 이상 수직계열화 구조 자체부터 허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신기술 개발 역량을 북돋고 국산화율을 높이는 데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략적 차원 특허 공유도 필요 이제 평면TV는 휴대전화 등과 함께 세계화의 척도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나 대만에서 패널을 생산해 멕시코공장에서 조립하는 등 가장 낮은 비용을 위해 전세계를 수소문하는 글로벌 소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니는 연내에 11인치 OLED TV를, 캐논은 55인치 표면전도형 전자방출화면(SED) TV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이들 차세대 TV가 상용화되는 5년 안에 현재의 LCDㆍPDP TV는 범용기술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 디스플레이 연합군은 새로운 기술전쟁에 직면해서야 결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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