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혼란스럽던 조흥은행 매각문제가 입찰에 참여한 신한 컨소시엄과 미국의 서버러스 컨소시엄의 입찰제안서가 공개됨으로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공개되지 않은 가격을 제외한 조건에서는 일단 신한 지주 컨소시엄의 조건이 나아보인다.
신한측의 조건 가운데 정부지분을 전량 매입키로 한 것이나 추가부실에 대한 정부책임 요구하지 않은 것 등이 눈에 띄는 조건이다. 신한의 전량매입 조건은 민영화 취지에 완전히 부합된다.
그래서 매각의 결정적인 조건은 가격이다. 양측 모두 조흥은행 주식의 액면가(5,000원) 이상을 썼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따라서 가격에 현격한 차이가 없다면 신한쪽이 유리한 국면으로 여겨진다.
가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경영계획이다. 서버러스는 인수 후 제일은행과 합병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탈이 제일은행을 인수했을 때 선진 경영기법이 도입되기를 기대했으나 기대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서버러스 컨소시엄에는 제일은행과 일본의 신세이은행이 참여하고 있다. 서버러스는 제일은행의 대주주인 뉴브리지 캐피탈의 대주주인 관계로 사실상 서버러스ㆍ뉴브리지 컨소시엄의 성격을 지닌다. 뉴브리지 캐피털은 공적자금이 17조원이나 들어간 제일은행을 5,000억원에 풋백옵션 조건으로 매입했다. 제일은행은 만기 예보채 상환에 따라 연말 안에 3조원 이상의 현금을 받게 된다. 서버러스가 제일은행을 끌어들인 것은 이 같은 유동성 조건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또 서버러스가 추가부실에 정부책임을 요구한 것은 제일은행 매각 때의 풋백옵션을 연상케 한다.
정부 지분이 80%인 상태에서 정상적인 금융기능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매각작업이 정권말기에 급작스럽게 추진되는 통에 정경유착설 등이 제기되긴 했으나 이번에 입찰제안서 공개로 의혹을 상당부분 해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하겠다.
부실기업의 매각은 빠를수록 손실이 적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은 공장을 돌리지 않으면 기계가 녹스는 제조업체에 더 해당되는 주장이다. 은행과 같은 서비스업체의 경우 산업의 경기와 해당업체의 경영능력이 보다 중요한 가격결정 요소라고 본다. 금융산업의 향후 전망이 그다지 나쁘지 않고 조흥은행의 경영실적이 금융업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여건에서 지금이 매각의 적기라는 주장은 단견일 수 있다. 당국은 마지막 까지 그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조흥은행 노사도 이런 점을 참작해서 신축성 있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매각결사반대 만으로는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인수상대의 장단점을 비교해 조흥은행에 유리한 상대를 선택하는 분별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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