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병자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96년은 기업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가 될 것이다. 지난해말 각 기업들이 발표한 경영계획에는 경쟁적으로 공격적 투자를 표방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는 연초부터 시작하여 달이 갈수록 개선되기는 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더군다나 기업외적 환경 또한 어느것 하나 플러스요인을 찾기 힘들었다. 화폐발행액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금리는 떨어지지 않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인한 다국적 기업들의 공격 파고는 갈수록 높아졌으며 주가의 하락으로 직접 금융시장을 통한 자본조달은 더욱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의 요구는 하방경직적 성격으로 기업여건과는 달리 변화의 탄력성을 잃고 있는 등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 결과 건설, 섬유업종기업들은 부도의 도미노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거의 전업종으로 파급되고 있다.한 기업인으로서 보건대 한국기업들에 몰아치고 있는 이러한 외적환경은 불었다 사라지는 폭풍 같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강한 바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계속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러한 바람은 모든 업종, 모든 기업들에 똑같이 몰아치는 단순한 경기사이클 형태가 아니라 업종에 따라, 그리고 기업에 따라 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람의 방향을 미리 예측한 업종, 바람의 강도를 예측한 기업, 이제 이들만이 생존할 수 있는 냉혹한 현실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동일업종 내에서도 기업별로 성쇠를 달리 할 것이다.
화려한 21세기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은, 첫째 무엇보다 건전한 기업문화의 조성을 위해 애써야 한다. 과거의 영광이나 현재의 조그만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무한경쟁의 경영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전임직원이 합심하여 주인의식을 갖고 고통을 분담할 줄 아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형식을 타파하고 기존의 의식이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끊임없는 혁신적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셋째, 고수익 미래성장사업의 창출을 위해 냉철한 분석과 정열적 투자를 집행할 수 있는 지성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돼야 한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정축년을 맞이하게 된다. 멀게만 느껴지던 2000년이 이제 바로 앞에 다가와 있다. 내년에는 노동관계법 개정에 따른 변화된 노사관계·대선 등 많은 내외적 요인들이 기업에 몰아칠 것이다. 노·사·정의 하모니가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