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말에 트집 안 잡히려면

요즘 국내 정치인과 지식인은 ‘폴리티컬리 커렉트(politically correct)’라는 말을 너무 의식한다. 폴리티컬리 커렉트는 사전적(辭典的) 뜻으로는 ‘정치적으로 공정한 것’ 또는 ‘정치적으로 편견 없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의미는 ‘말에 트집 잡히지 않으려는 것’이다. 빵이 부족하다는 평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과자라도 먹지”라고 말한 마리 앙투아네트와 “세금 낼 돈이 없으면 집 팔고 싼 집으로 이사 가면 되지”라고 말한 고위공무원은 말의 맥락이나 진의 여부와 관계없이 ‘말에 트집 잡힌 것’이다. 필자는 최근 어느 소규모 도시의 농촌 지도자들을 만났다. 나이 지긋한 마을 지도자 한 분이 말했다. “우리 마을은요, 하루에 평균 두 사람 장례 치르고 아이 백일잔치 하나 합니데이. 앞으로 10년만 있으면 농사지을 사람도 없심데이.” “FTA하고 나면 우리 농민들 다 죽는다카데예, 정말입니꺼?” 필자는 그날 자유무역협정(FTA)을 설명하러 간 것이 아니었고 또 필자가 답할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거꾸로 묻기만 했다. “선생님, 자제분들은 모두 이곳 가까이서 함께 살지요?” “아입니더, 다 성내에 삽니더”라는 자랑스럽고 대견한 표정의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자제분들이 먹는 양식은 고향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보냅니까?” “아니예, 우리가 지은 농산물은 정부에다 팔고 자식들은 사먹지예.” “자제분들은 국산 농산물을 주로 사먹겠네요?” “아일낍니더, 쌀이고 쇠고기고 수입품이 더 싸다 아입니꺼?” 소규모 도시의 또 다른 이야기 하나. 그곳 뼈대 있는 명문 출신 어느 고위공직자가 이렇게 말했다. “요즘 내가 태어난 읍에 가면 범죄가 한 건도 없습니다. 경찰서가 필요 없어요.” “고향 사람들이 그렇게 착해진 비결이 뭡니까?”라고 묻자 “도대체 범죄를 저지를 젊은 사람이 있어야지요. 젊은 사람들이 있어야 멱살 잡고 싸우고 자동차 사고도 나고 술주정도 하고, 그래야 경찰서가 붐빌 텐데”라고 대답했다. 필자가 또 “그래서 앞으로 고향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하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출향 인사들이 되돌아와야 할 텐데 요즘 시골이 재미가 없어서 돌아올 사람도 없고 걱정만 됩니다.” 며칠 전 출근시간에 서울역에서 택시를 탔다. 걷기는 조금 멀고 택시 타기는 좀 어정쩡한, 겨우 기본요금이 나올 거리. 이럴 때 기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솔직히 말해 돈 안 된다고 노골적으로 심통 부리는 기사가 없지 않지만 운 좋게도 그날 기사는 친절했다. 그리고 물어왔다. “FTA를 하면 우리 같은 서민은 다 죽는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FTA의 악영향이 반영돼 택시기사도 생활이 더 어려워지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답 대신 되물었다. “FTA가 뭐 하자는 것인데요?” 기사는 이렇게 답했다. “양쪽 나라가 수출하고 수입하는 물건에 대해 붙이던 세금을 내린다는 것 아입니꺼.” “세금이 내려가면 그만큼 물건 가격이 싸지고 필요한 물건 더 많이 사오고, 또 국민들은 값싼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고 좋은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자 마침 목적지에 도착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사회에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 해결 방안들에 대해 다수파는 대체로 수도 많고 또 옳은 경우가 많지만 무능하다. 반면 소수파는 약하고 맹목적이지만 혼자 힘으로 집요하게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다수파가 옳다는 증거가 제시되면 될수록 소수파는 더욱더 고집스럽게 한쪽 눈을 감고 자신들만의 해석에 집착하게 된다. 다수파 개개인은 ‘말에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침묵을 지킨다는 것을 소수파들은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농촌과 지방의 문제가 그렇고, 북한 문제가 그렇고, 부동산 문제가 그렇고, 그리고 일부 지역의 보선 공천 문제도 그렇다. 정치인과 지식인이 말에 트집 잡히지 않으려면 침묵하는 것이 최고다. 그러나 정치인과 지식인은 침묵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할 때 비로서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방향을 잡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경험과 역사가 들려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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