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KISTI의 과학향기] 명의(名醫)가 된 구더기

괴사 조직 먹고 자라는 특성 이용 손상된 환부 치료·감염방지 '일석이조'


지저분한 벌레의 대명사는 뭐니뭐니해도 구더기다. 구더기는 질병의 매개체인 파리의 유충이라는 점 때문에 역시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전환하면 이는 구더기가 부패하거나 괴사한 유기조직을 선별해 자란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더기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상처를 치료하거나 괴사 조직을 제거하는 치료가 당당히 현대 의학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물론 모든 구더기가 의료에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안전하고 치료 효과가 있다고 인정된 구더기들은 학명으로 페니시아 세리카다(Phaenicia sericata), 포미아 레지나(Phormia regina), 루실리아 일루스트리스(Lucilia illustris)라고 불리는 파리의 유충이다. 이들은 괴사 조직을 선별해 알을 낳는 특성이 있다. 이들 구더기를 괴사하고 있는 환부에 놓으면 구더기는 괴사 조직을 식량으로 먹으며 자란다. 흔히 우리가 벌레를 상상하는 것처럼 뜯어먹는 것이 아니라 특정 펩타이드를 분비해 괴사 조직을 녹인 다음 이를 흡수한다. 손상 조직을 직접 긁어내는 일반 외과시술에 비해 고통이 없고 거의 완벽하게 괴사 조직을 제거할 수 있다. 구더기는 손상된 조직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감염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이들 구더기가 유해한 세균까지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괴사 조직을 없애면서 감염까지 예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구더기뿐만이 아니다. 미국 아이오와대의 데이비드 엘리어트 교수팀은 기생충을 각종 질환에 사용하는 기생충요법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한 예가 대장염 치료에 돼지 편충을 사용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의 장 속에는 일정한 수의 편충이 살고 있다. 이들은 신체가 대장염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도록 돕기 때문에 편충의 수가 지나치게 줄면 질병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같은 기능을 하는 돼지의 편충을 인위적으로 넣으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피를 빠는 거머리를 이용한 치료는 민간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04년 처음으로 거머리의 의료적 사용을 허가했다. 가장 흔한 활용 예는 손가락이 절단돼 접합한 경우다. 미세 수술을 통해 동맥은 이을 수 있지만 정맥은 힘들다. 이럴 경우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아 퉁퉁 붓고 곪게 된다. 이 부위에 거머리를 붙여 피를 빨게 하면 고인 피를 뽑아낼 수 있고 강제적으로 혈액을 순환시켜 재생을 가속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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