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함평군에 사는 김모(70)씨 집의 지붕은 석면 슬레이트 재질이다. 김씨는 뉴스에서 정부가 슬레이트를 걷어내는 데 돈을 준다는 말만 듣고 지붕을 고쳐볼 생각으로 면사무소를 찾았지만 빈손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철거 비용 예산 지원을 받더라도 김씨가 60만원을 부담해야 하고 새로 지붕을 올리는 데 적어도 300만원 이상이 들기 때문. 지원만 믿고 찾아간 김씨에게 최소 360만원의 부담은 너무 버거웠다.
1급 발암물질로 사람 건강에 큰 해를 주는 석면 제거를 위해 정부가 발벗고 나섰지만 현실을 외면한 지원대책 때문에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4일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는 농어촌 석면 슬레이트 지붕 제거를 위해 예산 60억원을 편성했으며 목표는 1만 동이다. 한 집당 석면 지붕 철거 비용 기준을 200만원으로 잡고 나랏돈 60만원(30%)을 지원하고 있으며 도와 시ㆍ군이 예산을 합쳐 개인 부담은 60만원(30%)이다. 그러나 지붕을 새로 올리는 데 필요한 300만~500만원은 전혀 지원되지 않다 보니 앞서 김씨처럼 아예 신청을 안 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함평군은 올해 39동의 지붕을 없앨 예산을 확보했지만 신청은 30동밖에 안 했고 그나마 22동은 비용 부담으로 신청을 취소해 실제 공사는 8동에 그쳤다.
군 관계자는 "아직까지 슬레이트지붕을 안 바꾼 집은 살림살이가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고 홀로 사는 어르신도 많아 300만원을 내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이 상태라면 쓰지 않은 국비와 도비 모두 돌려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상남도는 자체 사업 예산을 편성해 다른 시도와 달리 석면철거와 지붕개량에 들어가는 전체 비용의 50%(최대 500만원)를 지원한다. 그러나 절반은 자기 부담이다 보니 전남도와 상황이 별반 다를 바 없고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합천군의 경우 올해 30동이 신청했지만 단 7곳만 공사를 벌였다. 군 관계자는 "50%를 지원해도 개인 부담이 300만원 이상 돼 주저하는 집이 많다"고 전했다.
지붕 넓이와 규모 등 가옥 특징에 관계없이 지원금을 일률적으로 배정한 데 따른 비효율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전라북도의 한 관계자는 "한 집에 대한 지원금이 적다 보니 모든 신청자가 부담을 느낀다"며 "융통성 있게 예산을 편성해 실제 철거 가옥 수를 늘리는 방안이 좋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140% 인상한 144억원으로, 목표는 1만5,000가구로 잡았지만 지원 방식은 전과 비슷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과거 새마을운동 주택 개량 때도 국비 보조는 30~40%만 해줬다"며 "한번에 모두 바꾸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중도 포기자가 많아 예산이 다 쓰이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가을 수확철이 지나면 농가에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추가 신청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2011년 시범사업 당시 신청 가구의 3분의1이 개인 부담을 못 이겨 중도에 포기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약 88만 동의 지붕이 석면 슬레이트로 덮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