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새 대통령이 해야할 일/배순훈 대우전자 회장(특별기고)

우리는 싫건 좋건 앞으로 1∼2년 동안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따라 긴축기조로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 우리가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도록 경상수지를 개선하는 일이 채권자인 IMF에는 제일 중요한 관심사다. 우리정부는 장기적으로 경상수지를 개선해야 하나 단기적으로는 긴축으로 발생하는 실업과 생활고도 해결해야 한다.정부예산의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실업을 구제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 당선된 새대통령은 애국심을 갖고 단기적으로 인기가 없으나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가 안정과 발전을 할 수 있는 기틀을 잡아야 한다. 한국경제는 판을 새로 짜야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크루그먼교수의 논문 이래로 자주 거론돼 온 문제다. 판을 새로 짜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의 개혁을 모두 원론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이유도 각 이해집단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거시적 개혁의 뜻은 좋았으나 미시적 실천에서 실패했다. 이제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국민은 과거 우리가 노력해서 이룩한 경제발전이라고 해서 그 과실만 주장해서는 안된다. 각자가 세계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활동을 해 생활의 질을 높여야 한다. 정부가 질적인 삶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회만을 만들어줄 뿐이다. 기업은 세계시장에서 경쟁에 이겨야 한다. 국가가 육성하고 보호하던 시대는 지났다. 대기업이 망한다 해도 국가경제는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정부는 경제적 안전판이나 과도한 사회보장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한국에서는 높은 질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선진시민이 몰려든다. 대통령의 역할은 작고 강력한 정부를 만드는 일과 더불어 국가 지도자로서 국민, 기업, 정부 등 나라의 모든 주체들에게 새로운 사회질서를 이해시키고 사회계약을 공고히 해나가는 것이다. IMF와 공존해야 하는 당분간의 경제활동도 이런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정책은 경제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경제전문가는 미시적인 경제운영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몇몇 대기업의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기업특성을 염두에 두고 수립되어야 한다. 지난 5년간 대기업 정책의 혼선은 오늘날 우리 경제 난국을 불러온 가장 큰 요인이다.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서는 무역수지를 개선해야 하고 동시에 외자유치를 해야 한다. 사치품 수입은 물론 감소해야겠지만 에너지원을 포함한 산업원자재 수입도 축소되면 산업활동이 위축되어 실업자가 발생한다. 내수를 진작하면서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경쟁국과 차별화해서 늘리는 방법은 없을까. 여러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법은 경제의 미시적인 움직임을 이해해야 창안할 수 있다. 해외투자가들은 한국기업의 투명성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기존 기업의 경우는 회계의 투명성을 의심하고 신규투자기업은 노사관행의 투명성을 의심한다. 부실은행을 해외투자가에게 팔기 위해서는 금융노조의 집단행동을 예측할 수 있고 대처방안이 있다고 믿어져야 한다. 긴축을 해야 한다고 해고를 하지 않고 종업원 모두가 감봉하고, 그것도 상후하박의 감봉을 하는 것을 해외투자가들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자본이 소유하는 기업에서도 한국 근로자는 같은 행동으로 대처할 것인가. 회계의 투명성은 금융의 신용과 연계되어 해결할 수 있다. 금융위기, 외환위기에서 정부의 금융정책은 땅바닥에 오른 중국 물고기같이 행동한다. 어디로 가려고 펄쩍 뛰는 것이 아니라 우선 물이 없는 땅바닥이 불편하기 때문에 뛰고 보는 것이다. 금융개혁을 우리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위기이기 때문에 무슨 정책이든 발표하고 본다. 이 시점에서라도 경험있는 전문가가 냉정한 관점으로 분석해 하나하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전문가가 국내에 없으면 외국에서 데려와도 된다. 문제는 전문가를 활용하는 지도자의 태도에 있다. 이제 우리는 거시적인 경제정책이 위기상황에서 별볼일 없다는 것을 경험했다. 경제의 미시적인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고 애국심을 가지고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일관성 있는, 그리고 경쟁국가들과 차별화되는 창의적인 정책을 창안하고 시현할 수 있는 경제관료가 필요하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긴축같은 당분간 인기가 없는 정책도 좋고 일부 계층의 불만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나도 좋다. 국민의 의사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충분히 반영되었다. 경제문제는 유권자들에게 인기있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경제논리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위기에 직면할 때 단결을 잘 한다고 한다. 단결은 모두가 똑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영웅적인 소수가 희생해 이룩할 수 있다. 인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차가운 경제전문관료를 선발해 당분간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소신있게 밀고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지난 몇달 동안 여러 힘든 과정을 통해서 국민은 이런 지도자를 선택했고 국민의 이런 기대가 저버려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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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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