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들은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경기부양책을 짜내고 있지만 마땅히 꺼내들 강력한 카드가 없어 고심 중이다.
미국과 일본은 사실상 제로금리인 만큼 금리인하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단기국채를 팔고 동시에 장기채권을 매입해 장기 금리를 낮추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택하고 있다. 경제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만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차 양적완화(QE)를 실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미국이 쓸 수 있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양적완화에 따른 급격한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라는 역효과에 대한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아시아 신흥국가들도 최근 성장엔진이 급격히 식어가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리스크 때문에 금리인하를 주저하고 있다. 인도는 지난 1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03년 이후 최저치인 5.3%까지 내려갔는데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해져 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인도중앙은행(RBI)은 물가상승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8.0%로 유지했다. 두부리 수바라오 RBI 총재는 "현 상황에서는 기준금리를 낮추면 경제성장을 반드시 촉진하지 않으면서도 물가상승 압력만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미의 경제대국인 브라질도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지면서 중앙은행이 지난해 8월 이후 금리를 8차례나 인하하며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8%)까지 끌어내리고 올 들어 4차례의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맥을 못 추고 있다. 여기에다 수출확대를 위해 헤알화 평가절하를 유도하면서 수입물가가 급등해 인플레이션 위험만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은행(WB)은 최근 "아시아 신흥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통화완화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본과 중국,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경기가 둔화되면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오래 전에 장기침체에 진입한 일본은 2월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도입하고 금융기관으로부터 국채 등을 매수하는 기금규모를 확대하는 등 금융완화책을 쓰고 있지만 소비자물가는 여전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인플레이션 공포에 시달리던 중국도 최근 소비자ㆍ생산자물가가 동반 하락하면서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7월 6.5%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올 6월 2.2%까지 떨어졌고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유로존이 심각한 디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했다"고 경고하면서 이탈리아 등 저성장 속에 세금도 제대로 걷히지 않는 국가들이 특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가들은 물가상승에 대한 부담 없이 통화완화정책 등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지만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한 곳에 쌓이기만 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나가하마 도시히로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경우에서 보듯이 디플레이션에 일단 빠지면 그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오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며 "일본 경제가 직면한 여러 복잡한 문제들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디플레이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