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12.9%' 인수매력 떨어지고 가격도 2兆대 부담<br>사모펀드가매수주체로나설수도
“도대체 언제, 어떻게 매각할 것인가.”
지난 7월22일로 LG필립스LCD(이하 LPL) 지분에 대한 ‘매각 제한’약속에서 풀린 네덜란드 로열필립스전자(이하 필립스)가 이후 “일부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의사만 거듭 확인해줄 뿐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후속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LCD 관련업계는 물론 주식 투자자들 모두 필립스의 지분매각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에선 “필립스가 지분을 매각할 의지가 강하지 않다”고 내다보는가 하면 또 다른 일부에선 “매각되는 LPL 지분이 여러가지 차원에서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필립스의 LPL 지분 매각은 과연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 "지분인수 매력이 크지 않다"
필립스가 LPL지분을 매각하고 싶은데 사고 싶어하는 투자자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다.
권영수 LPL 사장은 지난 7월 필립스의 지분정리 의사를 거론하며 “3분기 안에 지분 매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벌써 10월초. 그 사이 필립스의 지분 매각 움직임은 거의 포착되지 않았다. 권 사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 8월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로 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달라진 상황을 설명했었다.
시장 주변에선 하지만 “누군가가 필립스측의 지분을 인수하더라도 LPL 경영권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지분매각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라고 꼽았다.
LPL 지분 32.9%를 보유한 필립스가 현재 매각하기를 희망하는 지분은 12.9%인 것으로 알려졌다.
LPL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필립스가 지주회사시스템으로 전환됨에 따라 보유지분 20%를 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이사회의 간섭과 관여가 심하다”며 “이 때문에 LPL지분을 20% 미만으로 낮추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각 지분이 시장의 우려와 달리 부담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매수자 입장에선 회사 경영에 영향을 주지도 못하는데 천문학적인 거금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 "필립스의 매각의지도 의심스럽다"
지난 2분기부터 살아나기 시작한 LCD 경기가 오히려 필립스의 지분 매각에 발목을 잡는다고 보는 시각이다.
제라드 클라이스터리 필립스 회장은 지난달 10일 다우존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LG필립스LCD 지분을 20% 이하로 낮출 생각이지만 아직 뉴스거리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 같은 언급은 지분을 매각하고 싶은데 적당한 인수자를 찾지 못한 상황을 돌려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필립스 회장의 멘트에는 ‘급할 것 없다’는 뉴앙스도 짙게 깔려있다.
필립스는 유럽 TV시장에서 꾸준히 일정 수준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지켜오고 있다. 이 때문에 대형 LCD 패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LPL의 대주주 지위를 유지할 필요가 크다. 게다가 LCD시장이 호황기로 접어들면서 상당한 투자수익도 기대되는 시점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필립스의 현재 행보에 대해 “후한 값을 지불하겠다는 매수자가 있다면 모를까 당분간 작자가 나설 때까지 기다리면서 LCD 가격 상승과 LPL의 실적 개선의 과실만 즐기면 되는 ‘양수겹장’의 입장”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 사모펀드가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 크다
지난해말 한때 2만5,000원대까지 떨어졌던 LPL의 주가는 실적개선에 힘입어 최근 4만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필립스가 처분할 최소지분 12.9%를 시장가로 환산하면 대략 2조원이 넘는다.
올초부터 마쓰시타, 도시바, 샤프 등 일본 전자업체나 대만의 혼하이정밀 등이 인수대상자로 꾸준히 거론됐지만 이들이 일제히 인수 가능성을 부인하며 사실상 독자 인수 방침을 접은 이유에는 2조원이 넘는 막대한 인수가액 부담이 크다.
이즈음 눈길을 끄는 뉴스 한 토막.
지난달 16일 미국의 사모펀드인 워버그 핀커스는 대만의 3위 LCD 제조업체인 CPT의 전환사채(CB)를 2억5,000만달러를 매입했다. CB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워버그 핀커스는 CPT 지분은 10%에 달한다.
CPT 주가는 올해만 30%나 올랐지만 핀커스는 CB매입 당시 19%의 프리미엄을 얹어주었다. 워버그 핀커스는 “CPT 경영진의 능력과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믿고 투자를 결정했다”며 “앞으로 회사 경영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순수하게 재무적 투자임을 강조했다.
시장에선 이번 딜과 관련해 LCD 시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본 사모펀드의 ‘배팅’이라고 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LPL에 대한 또 다른 사모펀드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추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 관건은 가격차이인 듯
LPL 측은 안정적인 거래선 확보를 위해 필립스 지분을 수요처인 전자업체가 인수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규모가 조단위에 달한다는 점에서 대규모 자금동원능력을 갖춘 사모펀드가 매수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이 훨씬 현실적이다.
이 경우 필립스 측이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지분을 매각하려 한다면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금융계 한 관계자는 “요즘 같은 금융시장 분위기에서 필립스의 LPL 지분과 같은 대형 딜은 한 두명의 매수희망자만으로는 거래가 이뤄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LCD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싶어하는 전자업체들과 전망이 밝은 업종에 발을 걸치고 싶은 사모펀드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경우 필립스가 욕심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