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맞춤형 최저생활보장제 필요하다


한국의 사회제도 중에서 다른 선진국보다 우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사람마다 대답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속한 행정서비스, 보편적 건강보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꼽고 싶다. 이 중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곰곰 따져볼수록 참 대단한 복지제도다.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필요한 급여를 줘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는 이 제도는 2000년 10월 외환위기의 여파로 국가경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실직과 빈곤으로 사회적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던 역경의 시기에 도입돼 빈곤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했다. 이 제도는 '간결하면서 단호하게' 빈곤에 대처했다. 가구 규모별로 최저생계비를 설정해 가구 소득이 이보다 낮으면 빈곤가구, 높으면 빈곤하지 않은 가구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대상 판정이 간결하다. 또한 빈곤가구로 판정되면 생계ㆍ의료ㆍ주거ㆍ교육ㆍ자활 등 모든 급여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빈곤가구가 아닌 것으로 판정되면 어떤 급여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호하다.

근로빈곤·차상위계층 새 문제로 부각

제도가 처음 시행되던 10여년 전 이러한 접근법은 빈곤대책으로서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빈곤 모습은 크게 변했다. 무엇보다 절대빈곤보다 상대적 박탈감이 더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학계에서 빈곤율 측정 시에 최저생계비 대신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을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됐고 언론에서도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의 증거로서 상대빈곤인구 증가에 초점을 맞춘다.


또 다른 변화는 근로빈곤층과 차상위계층의 존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다. 절대빈곤인구로 인식되던 기초보장수급가구에 대해 오히려 과도한 중복 급여가 문제가 되는 가운데 차상위계층의 열악한 실태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절대빈곤문제가 완전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관심은 상대빈곤으로 옮겨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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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사회적 관심에도 통합급여체계의 현행 기초보장제도로는 별다른 대책을 제시할 수 없는 상대빈곤계층의 전형이 근로빈곤가구이다. 이들은 잦은 실업과 불안정한 취업으로 생활상의 박탈감은 심각하지만 기초수급대상에 들어가지 못해 국가 보호망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근로빈곤계층을 사회안전망으로 끌어들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복지체감 높이는 개별급여 도입해야

대상 인구를 늘리면서 소요재정을 최소화하는 방안 중의 하나는 대상집단의 욕구에 부합하는 급여를 제공하는 개별급여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개별급여방식은 욕구에 직접 대응하는 맞춤형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자원 사용의 효율화를 가져올 수 있다. 더 나아가 각 급여별 수급 요건을 달리해 급여내용을 다양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 빈곤층의 복지체감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개별급여체계가 도입되면 그동안 보건복지부 홀로 제공했던 생계ㆍ의료ㆍ주거ㆍ교육ㆍ자활급여 등이 중앙정부의 개별 부서별로 제공하게 된다. 생계와 의료는 보건복지부, 주거는 국토교통부, 교육급여는 교육부, 자활급여는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가 공동으로 맡아 보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서비스가 제공된다.

통합급여에서 개별급여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의할 점도 있다. 분산 제공되는 각 급여들은 그 뿌리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므로 애초 입법에서 강조됐던 최저생활보장의 원리는 반드시 준수돼야 한다. 또한 개별 부처로 분산 운영되는 가운데 상실될 우려가 있는 각 급여 간의 체계성 확보도 중요하며 이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주요 책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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