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일 내놓은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에 따른 부작용 방지안`을 보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부실화 징후를 보이는 대주주와 해당 금융회사 간 거래금지 명령제를 도입키로 한 것이나 출자자 자격요건을 강화한 것 등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 차원에서 볼 때 진일보한 정책이지만 당초 검토했던 대주주 자격 유지제 도입을 백지화 하고 금융계열분리 청구제의 도입도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개혁의지가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번 방안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 되고 말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부작용을 없앨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이라면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에 진출하는 데 대해 찬성보다는 반대논리가 우세해질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외국자본의 금융지배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시민단체 등이 `알맹이 없는 로드맵`이라며 참여정부의 개혁의지가 후퇴했다고 비판하고, 재계도 “은행에 대한 소유제한을 풀지 않아 결과적으로 외국자본의 금융 지배를 방치하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폐해는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실감한 바 있다. 외환 위기 당시 무리한 대주주 지원으로 금융산업이 크게 부실화했고 이에 따라 국민의 혈세인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 가면서 한국 금융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율이 급속히 올라가고 있어 또 다른 문제점을 낳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은행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율(총자산 기준)은 30%로 2~19%인 여타 아시아 각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또 국내 은행권의 외국인 지분율(주식시장을 통한 간접투자 포함)은 38.6%로 최근 5년간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적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부작용 방지대책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한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은 계속 어렵게 되는 반면 외국자본의 지배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더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외국자본의 금융지배를 저지하기 위해 주식사모펀드 도입 방침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시기적으로나 실현가능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특히 자본력이 풍부한 주요 대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성사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결국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부작용 감소방안을 보다 확실하게 강구하는 것이 금융산업의 건실화와 자본구성의 다양성을 동시에 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양정록기자 jrya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