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업은 잘하고 있는가(사설)

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다. 금년들어 벌써 무역수지 적자가 74억달러를 넘어섰고, 외채도 1천1백억달러를 돌파했다. 우리가 만든 물건은 세계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데 비해 수입은 계속 늘고 있다는 증거다. 갚아야 할 외채 중에서도 절반 가량이 일년 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성 부채다. 그럼에도 외화는 벌어들이지 못하는 형편이니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내는 형국이다. 빚 얻어서 빚 갚는 나라에 싼 이자로 돈을 꾸어줄 나라가 별로 없을테니 결국 높은 이자를 주고 돈을 꾸어와야 하는 악순환을 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이렇게 경제가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우리 마음속엔 이를 극복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려는 자세가 보이질 않는다. 이러다가 정말 위기상황이 도래해버리면 거기서 헤어나오기가 무척 힘든 일이다. 미국 MIT대학의 레스터 서로 교수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때다. 일단 위기에 빠진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드는 노력은 위기로 치닫는 경제를 위기에 도달하지 않도록 막는 노력보다 몇 갑절 더 든다고 그는 지적했다. 최근 발표된 연말결산법인들의 96 회계연도 영업성적을 보면 매출액 증가율이 전년도에 비해 크게 둔화되었고, 영업결과를 나타내는 이익률도 미미하여 겨우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에 그쳤음을 알 수 있다. 속된 표현으로 말하자면 장사 헛한 것이다. 여기에 연초의 노동법 파동과 한보사태까지 겹쳐 경기가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든 상황이다. 국내 경제환경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기업들의 자세는 어떤가. 우리의 판단으로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이 품질이다. 품질의 중요성을 모를리 없겠지만 우리 기업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의 품질수준은 경쟁국들과 비교해 볼 때 낮은 형편이다. 품질수준 뿐만 아니라 불량품에 대한 태도도 너무 허술하다. 불량인 줄 버젓이 알면서 물건을 선적하고 있으며 내수판매에 있어서도 소비자의 눈만 속일 수 있다면 흠이 있어도 그냥 파는 것이 다반사다. 지금은 무한경쟁의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품질의 제품으로 살아 남기 어렵다. 얼렁 뚱땅 눈속임으로 일단 팔고 보자는 식의 매출전략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둘째로 서비스의 부재를 들 수 있다. 고객만족이라는 구호는 열심히 외치면서 정작 고객들에게는 불만만 쌓이게 하고 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우리 소비자들은 무엇보다도 진짜를 원하고 있으며 제조업체 또는 유통업체로부터의 탄탄한 보증을 원하고 있다. 과거에 너무 많이 속아 본 경험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유통기관들은 소비자가 며칠 전에 산 물건을 반품 내지 반환하려고 할 때 선선히 응해 주는 곳이 드물다. 또 최종 소비자만 고객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최종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내부고객인 종업원을 만족시켜야만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 불만족해 하는 종업원이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낼 수 없고, 또 불만족한 영업사원이 고객에게 맘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베풀기 어렵다. 그런데도 노사가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로 제품개발 및 경영혁신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 소비자의 기호나 욕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데 우리 기업들이 시장에 내놓는 제품들은 천편일률적이고 개성이 없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보아도 그렇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그렇다. 교육서비스도 그렇고 금융서비스도 그렇다. 뭔가 남과 다른 특이한 상품이 눈에 잘 띄질 않는다. 경영혁신 측면에서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수평조직이 되어야 하고 능력과 성과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직적 다단계 조직과 연공서열에 의한 보상이 아직도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근착 포천지에 보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들을 소개하면서 이 기업들이 존경받게 된 이유로 크게 두가지를 들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제품이다. 지식사회의 도래라는 메가트렌드와 일맥상통하는 결과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재계가 경영혁신운동을 제창하고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전경련회장단은 생산성 향상·임금 안정·소비재수입 자제·근검절약 등 경영혁신 운동을 재계 전체로 확산시켜 나가기로 했다. 위기론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경제살리기에 앞장서겠다는 자세는 어느모로 보나 기대를 갖게 한다. 일시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뿌리내려 실효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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