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7월 22일] 금융소외와 정부의 역할

이건호(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금융학)

금융소외자 문제가 더 이상 금융 부문의 문제로만 머물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 같다. 사금융 이용자가 190만명, 시장규모가 16조5,000억원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지만 사금융의 속성상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저소득 개인이나 영세상인 등 서민들이 제도권 금융기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금융의 피해자로 전락하는 현상이 확산되면서 점차 계층 문제화돼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이 금융시장의 왜곡과 정책실패에 따른 부의 양극화에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富의 양극화·금융시장 왜곡 심화
금융소외자 문제가 부의 양극화에 기인한다는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1992년 전체 가구의 75%를 차지하던 중산층 비중은 2006년에는 58.5%로 하락했다.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믿는 사람의 비율 또한 1997년 41%에서 2007년 28%로 줄었다고 한다. 물론 중산층의 감소는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를 뿐 아니라 중산층에서 이탈한 이들의 대부분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도시가구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빈곤층의 증가가 금융소외를 가속화하고 금융소외는 다시 빈곤층의 소득창출기회를 제약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부의 양극화가 금융소외를 불러온 또 다른 원인은 시장원리를 앞세운 금융기관의 비윤리적 경영행태와 이를 방조한 정부의 무책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금융기관들은 현금살포에 가까운 무분별한 신용공급으로 가계신용위기를 초래하고 신용불량자를 양산해내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대규모 금융소외를 촉발시켰다. 이후 주택담보대출의 적극적 확대를 통해 부동산투기를 촉발함으로써 부유층에는 이른바 레버리지를 이용한 소득창출과 주택가격의 급등에 따른 부의 증가라는 선물을 안겨준 반면 담보능력이 부족한 서민 및 영세자영업자의 금융접근성은 더욱 악화돼 사금융의 창궐과 금융소외를 심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조기에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데 실패했다. 금융소외 문제를 개인의 무능력이나 도덕적 해이라는 시각으로 일관했을 뿐 아니라 공공성을 외면한 채 철저하게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잠재적 피해자를 양산해낸 금융기관들의 행태조차 선진화 과정으로 이해하고 암묵적으로 조장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파산이나 채무불이행이 사회문제가 되는 수준으로 심각해지면 선심 쓰듯 채무탕감이나 신용회복을 위한 조치 등 구제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서민정책의 대폭 강화를 천명하고 그 일환으로 금융소외자 문제의 적극 해결에 팔을 걷고 나선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자칫 정부의 노력이 약자의 구제, 즉 빈곤대책이나 경제적 실패자에 대한 회생기회의 부여 정도에 머물러서는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금융소외자 문제는 우리 경제시스템의 실패에 대한 반증이며 금융시장의 핵심적인 부분에 공백이 발생해 이를 사금융이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공공성 갖춘 금융시스템 마련을
따라서 금융 측면에서는 신용회복 지원이나 공적보증 확대도 중요하지만 은행을 비롯한 대형 금융기관의 공공성을 제고하고 서민금융기관이 번영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금융시스템 전반을 개선하고 금융기관의 지나친 영리추구를 억제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금융 외적인 측면에서는 시장원리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과감한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서민계층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보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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