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ㆍ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동북아 질서가 새롭게 구축되는 발판이 될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바라보는 외교ㆍ안보 전문가들의 시각은 이 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적 실익이 최우선인 FTA 협상 결과의 파급 효과는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바라 봐야 한다는 지적인 셈.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은 1일 “큰 틀에서 봤을 때 양국간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시민사회 전반에 걸쳐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겠지만 직접적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핵 6자 회담ㆍ전시 작전통제권 환수ㆍ주한 미군 기지 이전 문제 등 양국간 현안 논의를 결정할 ‘주요 변수’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 실장은 그러나 “시민사회의 밀접도와 경제적 의존성이 상호 심화되면서 시간이 지나 장기적으로는 동맹 체제의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덧붙였다. 최원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정치적 상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양국 간 현안 협의에 있어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미 FTA 타결은 동북아 지역의 역학 구도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FTA는 통상의 확대라는 경제적 목적을 추구하지만 한미는 ‘한미 상호방위 조약’으로 결속되어 있는 주요 안보 파트너라는 점에서 ‘안보 관계의 강화’라는 정치적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기 때문.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동북아시아 질서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인 미국과 중국에 있어 한ㆍ미는 안보 협력, 한ㆍ중은 경제 협력이 최근의 방향성”이라며 “경제 영향권에 편입되는 FTA체결로 한미 안보 협력관계가 강화되면서 전략적 관점에서 미ㆍ중의 세력 균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가 안보 위주의 한미 동맹을 경제를 포함하는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한반도 평화유지에 기여할 것’(삼성경제연구소보고서‘한미 FTA의 정치경제학’)이란 평가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최근 미 의회조사국(CRS)도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양국의 통상 증진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포석”이라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한ㆍ미ㆍ일 삼각 동맹에도 변화가 일까. 지금까지는 한ㆍ미 보다 미ㆍ일 동맹 관계가 공고했던 게 사실. 그러나 FTA타결을 계기로 무게추가 옮아갈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한 일본 당국자 발언에 대한 미측의 반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범죄의 중대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책임 있는 태도로 대처하길 바란다”(톰 케이시 미 국무부 대변인), “(일본의 억지 주장이)개탄스럽다”(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는 등 일본에 대한 미측의 직설적인 비판은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것이었다. 이는 민주당 주도의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채택이 힘을 받고 있는 국내적 상황과 북핵 6자 회담 과정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일본에 대한 반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백 실장은 그러나 “눈길을 끄는 이슈(위안부 발언)로 인해 일시적인 비판이 있을 수는 있지만 구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근본적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은 당분간 미국의 주요 파트너 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