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5일] 스탬퍼드 래플스


래플스, 래플스, 래플스…. 항구도시국가 싱가포르 곳곳에 새겨진 이름이다. 거리며 호텔ㆍ백화점ㆍ광장에 래플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공통점은 가장 중요하거나 비싸다는 것. 싱가포르항공의 1등석도 래플스 클래스다. 싱가포르는 왜 래플스를 최고로 여길까. 국조(國祖)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싱가포르를 세운 사람이기에 그렇다. 최초의 동물원인 ‘런던 동물원’을 세운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스탬퍼드 래플스(Stamford Raffles)는 1781년 자메이카 연안의 배 위에서 태어나 초년 고생을 겪었다. 출발은 동인도회사 사환. 노예무역에 종사하던 부친이 망하자 14세 때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23세 때 사무관보에 임명된 그는 영국에 거대한 식민지를 안겨줬다. 나폴레옹전쟁으로 프랑스에 병합된 네덜란드의 식민지 자바(지금 인도네시아)를 빼앗은 것. 전후 영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자바를 네덜란드에 돌려줬지만 래플스는 ‘아시아 무역을 위한 중계기지가 필요하다’는 뜻을 꺾지 않고 개인적으로 사람이 없는 지역을 찾기 시작, 1818년 한 곳을 찾아냈다. 싱가포르가 이렇게 태어났다. 래플스가 상륙할 당시 150여명에 불과했던 싱가포르 인구는 3년 뒤 2만명으로 불어났다. 말라카 해협의 요충지라는 천혜의 이점 덕에 상선도 3,000여척이나 모여들었다. 아편 중개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싱가포르는 래플스가 사망(1781.7.7)할 무렵 아시아권 최대 항구로 떠올랐다. 싱가포르 총독으로서 래플스의 통치 방침은 정치적 속박과 경제적 자유방임. 1인 독재를 하면서도 상인들의 권리를 최대한 받들었다. 비민주적 정치와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싱가포르의 특성이 싹튼 것도 래플스 시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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